유새롬 대표
K-힐링소설로 불리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작은 서점을 열고 책을 통해 사람들과 위로를 주고받는 주인공 영주의 이야기다. 정읍 상동의 한적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작은새책방’.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휴남동서점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책장과 은은히 풍기는 커피 향, 선한 미소로 반기는 주인장의 모습은 소설 속 영주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작은새책방의 주인인 유새롬 씨는 서울에서의 고된 직장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고향인 정읍으로 돌아왔다. 그저 책이 좋아서, ‘망하면 내가 읽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다. 책 못지않게 커피에 대한 애정이 깊은 그는 카운터 한쪽에서 느릿하게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안쪽에는 여럿이 모여앉을 수 있는 제법 큰 책상 하나가 숨어있다. 누구든 편하게 와서 차 한 잔과 책 한 권을 나눌 수 있도록, 작은새책방의 공간은 그렇게 채워졌다.
“저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때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하던 익숙한 길이거든요. 관광지도 아니고 번화가도 아니지만, 저처럼 이 길을 지나는 아이들이 오며가며 책방에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 자리에 문을 열었어요. 책은 생각보다 생활감이 강한 물건이거든요. 일부러 책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우연히 들러 평소 읽고 싶던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껴요.”
작은새책방의 서가
3년 전 겨울, 당시 동네에 예쁜 책방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오픈 전부터 이웃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문을 연 첫날 생각지도 못한 많은 책이 팔렸다. 물론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종이책을 직접 만지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건 큰 의미를 가졌다. 전국적으로 개성 있는 책방들이 늘고 있지만 정읍에는 현재 일반서점 두세 곳을 제외하면 작은새책방이 유일한 독립서점의 역할을 한다. 유새롬 대표는 지역에 책방이 필요한 이유를 고민하며 오히려 ‘작은 것’에서 답을 찾았다.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는 많은 양의 책이 있지만 어떤 책을 고를지는 독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잖아요. 동네서점은 오히려 적은 선택지 안에서 독자에게 맞는 책을 직접 추천해 줄 수 있는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손님들이 오셔서 ‘초등학교 1학년이 볼만한 책 좀 골라주세요.’, ‘이 책은 어때요, 저 책은 어때요?’ 물어보시거든요. 제가 더 많이 읽고 좋은 책을 권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동네책방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가 믿는 책방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매일 쏟아지는 신간들을 공부하며 일단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중 매월 한권의 책은 특별대우를 받기도 한다. ‘다독다독 프로젝트’를 통해 이달의 추천 도서와 차, 정성스레 쓴 손편지 등을 함께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개념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재밌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책방의 2주년을 기념하며 ‘작은헌책방’을 열었다. 주민들이 1인 책방지기로 변신해 가지고 있는 책을 판매하는 중고책 플리마켓이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참여한 5팀 대부분 완판을 거두며 서로의 책과 취향을 나눴다.
책모임ㅣ사진 작은새책방
가끔은 책장을 전시장으로 변신시킨다. 정읍에서 유리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강희경 작가와 협업해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책이 놓이던 자리에 작품을 진열하고 작가에게 직접 작품 이야기를 들으며 책방의 공간적 경계를 허물었다. 정기적으로는 독서모임을 꾸준히 운영하며 사람들이 모이고 문학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혼자 힘으로는 많은 행사들을 꾸준히 이어가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새로운 기획을 통해 ‘살아있는’ 책방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마음껏 글을 쓰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정읍에 살면서 느낀 아쉬움은 경험할 게 너무 없다는 점이거든요. 저희 서점이 아이들에게는 놀다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싶고, 실제로 청소년자치연구소와 함께 ‘어린이·청소년 작가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같이 읽을 책을 어서 골라놔야겠다며 웃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그는 작은새책방이 정읍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아 “무언가 필요할 때 오면 무엇이든 얻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그게 뭐가 됐든 손님들이 원하는 걸 착착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