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문화탐방ㅣ사진 둘레
쌍화차거리 바로 옆 골목, 한 상가에서 흥겨운 노래 소리가 들린다. 문화예술단체 ‘둘레(이사장 안수용)’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아침 10시가 땡 치면 동네 어르신들이 이 공간으로 모여든다. 오늘은 노래 교실이, 내일은 기타 수업이, 다음날에는 한국무용까지. 일주일 내내 다양한 수업이 열리는 이곳은 어르신들에게 학교이자 놀이터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세대를 불문하고 즐기는 인문학 콘서가 열린다. 주말에는 사람들과 모여 문화탐방을 떠나고 청년들은 함께 버스킹을 펼친다. 문화와 예술로 정읍을 복작복작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 안수용 이사장을 통해 ‘둘레’의 이야기를 만났다.
세대를 넘어, 일상에 문화 더하기
둘레를 소개한다면 ‘인문학콘서트 농담’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매달 한 번씩, 전국의 예술인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화공연을 즐기는 이 프로그램은 벌써 6년차가 되었다. 연지아트홀의 200개 객석을 매번 꽉 채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인기의 비결 중 하나를 꼽는다면 출연자가 누구인지 미리 알 수 없는 ‘비밀 게스트’ 운영 방식에 있다. 공연 당일까지도 출연진을 공개하지 않아 관객들은 무대를 통해서야 출연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유명세를 따르거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인과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벤트이기도 하다.
“작은 도시다 보니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데요. 전국에서 온 예술인들을 만나고 공연도 함께하다 보면 시민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접하면서 시민들이 가진 문화의식을 높이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늘려서 문화적인 역량을 키워주고 싶은 바람으로 이러한 활동을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인문학콘서트 농담(위), 안수용 이사장
이들의 활동을 들여다보면 특정 세대가 아닌, 다양한 세대의 삶 속에 문화를 더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의 일환으로 10여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눈을 뜨면 갈 곳이 없다는 고독함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둘레는 어르신들이 문밖을 나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찾고 삶을 다시 활기차게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다.
청년들을 위해서는 예술활동의 무대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각자 활동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들을 연결해 함께하는 버스킹을 선보인 것이다. 관객이 모이기 어려웠던 코로나 시기에도 40회 이상 합동 버스킹을 진행하며 청년들에게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일상 가까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나누지 않고 섞여 함께하는 활동도 있다. 둘레의 ‘시민 뮤지컬단’이다. 청소년, 농부, 직장인, 주부, 중장년층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시민뮤지컬단은 각자 일상생활이 끝나면 저녁에 모여서 연습을 갖는데 다들 열정이 넘치세요. 연기와 노래, 춤을 배워서 상반기에는 갈라쇼를 열고 하반기에 본 공연을 갖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뮤지컬이란 이런 거구나’를 알리고 싶어요. 아직은 저희만의 시나리오를 써서 기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보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을 각색해 올리고 있는데요. 기회가 되면 지역의 소재를 활용해 정읍의 대표 브랜드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마을공연장 버스킹ㅣ사진 둘레
정읍 상징하는 문화콘텐츠를 찾아
이외에도 시민기자단 운영, 정읍사용설명서 ‘정읍이곳’ 개발, 지역의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는 ‘정읍 인싸’, 청소년 문화기획단 ‘네온’을 운영하는 등 문화를 일상에 들여놓기 위한 수많은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둘레가 지금처럼 지역에 다양한 가지를 뻗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안수용 이사장이 먼저 지역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가능했다. 정읍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적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8년 개인 연구소로써 소소한 문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2010년 사단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둘레’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2013년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레’라는 이름 안에는 사람과 사물, 자연, 문화 모든 것을 두루두루 감싸 안겠다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있다. 앞으로도 그 이름답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둘레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정읍을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처럼 차근차근 크고 작은 활동들을 쌓아갈 계획이다. “정읍하면 유명한 내장산이나 쌍화차, 한우 말고도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콘텐츠를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자 둘레의 꿈이다. 당장 이번 달 주말에는 잠깐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 떠나는 문화탐방을 앞두고 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지며 정읍 문화예술의 둘레는 조금씩 크기를 넓히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