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 5.1-5.10   2024.5월호

스물다섯 살 영화제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장을 향해


2000년 봄, 밀레니엄 베이비들과 함께 전주국제영화제가 세상에 태어났다. 올해 영화제는 완전한 성인으로 자리매김하는 의미 있는 나이 스물다섯이 되었다.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전주국제영화제. 올해는 특히 한국경쟁과 국제경쟁 부문이 모두 역대 최다 출품 수를 기록하며 창작자들의 열정이 돋보였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화인들과의 만남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과 특별상영 등도 기대를 모은다.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 소소한 변화와 성장이 돋보이는 영화제 현장과 함께 5월의 시작을 특별하게 열어보자.



한국경쟁 <담요를 입은 사람>



독립영화, 다시 힘을 내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단편경쟁 부문 공모에는 지난해보다 191편이 늘어난 1,332편이 모였다. 국제경쟁 부문 역시 747편이 출품되며, 작년 대비 143편이나 증가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독립영화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코로나 시기에 제작되어 적은 규모와 출연진, 제한된 장소를 활용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여러 영화에서 나타났다. 그 덕에 ‘미니멀’한 매력을 풍기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평가다. 어쨌든 더 많은 작품이 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는 소식은 반갑다. 


공식 상영작은 43개국 232편으로, 82편의 영화가 전주에서 세계 최초로 관객들과 만난다. 한국경쟁 부문을 살펴보면 여성과 가족에 관한 서사가 강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독특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거나 소재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등장해 독립영화가 지닌 다양성을 지켰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기획 단계부터 배급까지 제작 전과정을 지원하는 산업 프로그램인 전주프로젝트의 존재 의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주프로젝트의 워크인프로그레스 작품인 <미망>, <담요를 입은 사람>, <양양>은 모두 한국경쟁에 진출했다. 


올해는 국내 및 국제영화제의 지원 예산이 절반 가까이 줄며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전주시를 비롯한 외부 후원을 통해 외형적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전주프로젝트를 통한 지역 내 단편 제작 지원 역시 줄지 않고 계속될 예정이다. 여기에 지역 독립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특별상영 프로그램인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도 신설했다. 광주, 강원 등 전국 각 지역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고 영화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지역 영화 사이의 네트워크를 연결한다.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 <무소주>




영화로 만나고 소통하기

지난해 개막작의 주인공으로 전주를 찾았던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에 이어 올해도 거장의 발길이 이어진다. 영화적 깊이와 주제 의식으로 대만 예술영화를 상징하는 감독 차이밍량이다. 그는 전주영화제가 막 출발하기 시작했던 2001년,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 <신과의 대화>를 선보이며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붉은 승복을 입은 인물이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걷는 그의 ‘행자 연작’은 영화계 혁신의 상징과 같다. 2012년 제작한 <무색>부터 2024년 선보인 <무소주>까지. 10편의 연작과 함께 그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이강생 배우가 함께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매해 다양한 분야의 영화인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자신만의 관점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보이는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허진호 감독과 함께한다. 대표작인 <봄날은 간다>, <외출>을 비롯해 <바보들의 행진>, 〈파리, 텍사스〉, <동경 이야기> 등 오래 전 극장에서 보며 영화적 울림을 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관객들과 공유한다. 지난해 처음 선보이며 긍정적 반응을 얻은 ‘전주씨네투어’도 올해 이어진다. 독립영화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매니지먼트사와 함께 영화 상영과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주씨네투어x마중’은 작년 눈컴퍼니에 이어, 바로엔터테인먼트가 참여해 진구, 공승연, 이유미, 이수경 등 익숙한 배우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허진호 감독의 <외출> 




기억하고 기념하기 

올해의 영화제는 특히 기념할 만한 이야기가 많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 그날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추모하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을 마련했다. 6편의 작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거나 10주기를 맞아 소규모로 개봉한 영화들이다. 여전히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아픈 기억을 함께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 


한국영화계에 ‘디지털’이라는 화두를 던지는데 함께한 한국영상자료원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영화제가 지나온 25년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의 50주년을 기념하며 ‘다시보다: 25+50’ 특별전을 준비했다. 그동안 영화제에서 큰 반향을 모았던 영화 4편과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1950년대 걸작 4편,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각각 타계한 김수용, 이두용 감독의 대표작 1편씩, 총 10편을 최신 복원해 디지털화 버전으로 상영한다. 


영화제의 대표 전시 프로그램인 ‘100 Films 100 Posters’도 기념일을 맞았다. 의미 있는 10회를 맞이해 장소의 다양성을 넓혔다. 팔복예술공장을 중심으로 했던 전시를 남부시장 안에 새로 조성된 ‘문화공판장 작당’ 등 여러 공간으로 확장한다.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역대 전시 포스터를 전주의 관광 명소들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개막작


새벽의 모든 

미야케 쇼|2024|일본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후지사와는 PMS(월경전증후군)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회사에 입사한다. 또 다른 신입사원 야마조에, 알고 보니 그 또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동병상련을 느낀 두 사람은 서로 도우며 마음의 상처들을 점차 치유해간다.

세계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 중 하나인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새벽의 모든〉은 일본 작가 세오 마이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따뜻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예술영화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관객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폐막작


맷과 마라 

카직 라드완스키|2024|캐나다 


젊은 문예창작과 교수인 마라는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도중 과거에 알고 지냈던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 매트와 재회한다. 둘 사이의 유대감이 자라면서 친밀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관계에 대한 부담감도 커진다. 그렇게 친구이자 가족이고 동료인,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맷과 마라’는 최근 독립예술영화가 잘 택하지 않는 현실적이고 독특한 성격의 로맨스 영화로 통한다. 모든 인물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제작 형식과 장르의 특성을 넘어 인간 삶에 대한 탐구, 정의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성을 극대화한 묘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보는 재미가 더해진 작품이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