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물건을 잔뜩 사고 나면 점원이 묻는다. “봉투 필요하세요?”. 별 생각 없이 봉투를 받아들고 알록달록한 비닐과 종이, 플라스틱으로 잘 포장된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우르르 담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이 가게’에서는 이렇게 친숙한 풍경을 볼 수 없다. 제품을 구입해도 담아갈 봉투를 주지 않고 무언가 필요하면 쓰던 용기를 챙겨와 스스로 덜어가야 한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제로웨이스트 가게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제로웨이스트샵’이라는 이름의 상점들이 하나둘 골목에 등장했다. 제로웨이스트의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ZERO(0)’와 ‘WASTE(쓰레기)’ 두 단어가 더해진 ‘제로웨이스트’는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쓰레기를 최소화하며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 방식을 말한다. 기후문제가 심각해지면서 2010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된 이 흐름은 202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나라에도 파급되며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전국에 문을 열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가게들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사고파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원순환센터의 역할을 함께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종이팩이나 플라스틱 병뚜껑, 브리타 필터, 크레용 등의 물품을 회수해 재활용이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제로웨이스트 가게들은 서로 연대하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도모도모’라는 이름의 연대 모임을 만들어 전국 150여 개의 제로웨이스트 가게들이 실천을 함께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일회용 스푼 퇴출, 묶음포장이나 이중포장 금지를 요구하는 캠페인 등을 벌이며 환경을 향한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구를 살리는데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의심할 수 있지만, 이들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지난해 기준 제로웨이스트샵 53곳의 리필 판매량과 재활용품 수거 양을 집계한 결과, 약 60톤의 온실가스를 저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 동안 절약한 플라스틱 병은 21만 개를 돌파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줄이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반갑게도 제로웨이스트샵은 최근 몇 년간 그 수가 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늘어나는 만큼 동시에 문을 닫는 곳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매장 운영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투잡’이 필수(?)라고도 한다. 제로웨이스트샵은 기후와 환경을 생각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힘을 낼 수 있다. 이 작은 가게들이 오랜 시간 살아남는 방법은 동참하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많아지는 것이다. 아직은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전북의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한데 모아 소개한다. 오늘 하루는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내 주변의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들의 참여가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