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남긴 것   2024.6월호

영화의 거리를 채운 232개의 이야기


어김없이 붉은 포스터가 골목마다 펄럭이고, 알록달록 아이디카드를 목에 건 영화인들이 거리를 채웠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도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100개 포스터가 필름처럼 이어지는 거리 위 풍경까지, 전주 구도심의 5월은 올해도 화려한 축제장으로 변신했다. 그 안에서 만난 새로운 영화와 사람들. 올해 우리는 영화의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만났을까? 지난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전주 곳곳의 거리를 물들인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돌아보았다.






더 많은 관객과 닿기 위해 

올해 영화제는 20개 섹션, 43개국 232편의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했다. 역대 최다 상영(590회차)에 역대 최다 매진(381회차) 기록이다. 좌석점유율은 83.1%였던 전년 대비 4% 정도가 하락한 79.2%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또한 조직위가 티켓 구매의 편의성을 위해 상영 회차를 50회차 정도 늘리고, 좌석 수를 5천 석 가까이 늘리며 온라인 티켓 매진으로 인한 관객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과다. 


한국경쟁 3관왕 기록 <힘을 낼 시간>

올해 수상작에는 16편의 영화가 이름을 올렸다. 국제경쟁 부문의 대상은 잉그리드 포크로펙 감독의 <메이저 톤으로>에게 돌아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열네 살 소녀 아나의 성장영화로, 팔에 이식한 금속판이 모스부호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알게 되며 시작되는 SF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경쟁 부문은 은퇴한 무명 아이돌들의 이야기를 다룬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이 차지했다. 배우상, 왓챠상까지 함께 수상하며 3관왕의 기쁨을 누렸다. 올해 역대 최다 출품을 기록했던 한국단편경쟁 부문의 대상은 공선정 감독의 <작별>에게 돌아갔다. 


이외에도 국제경쟁 부문에 <쿨리는 울지 않는다>(감독 팜응옥란)가 작품상을, <쓰레기장의 개>(감독 장 밥티스트 뒤랑)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배급지원상에 <담요를 입은 사람>(감독 박정미), CGV상에 <언니 유정>(감독 정해일)가 이름을 올렸다. 한국단편경쟁 부문 감독상에는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감독 임지선)가, 특별 부문 다큐멘터리상에 <목소리들>(감독 지혜원), J 비전상에는 <너에게 닿기를>(감독 오재욱)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경쟁 대상 수상작 <힘을 낼 시간>



영화의 본질에 집중한 프로그래밍

특별전과 회고전도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로 25회를 맞은 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다시 보다 25+50'은 <미망인>(감독 박남옥)과 <피아골>(감독 이강천) 등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영화들을 소개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특별전에서는 6편의 영화  상영을 통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J 스페셜클래스', '마스터클래스', '영특한클래스' 등 다양한 클래스를 통해 전문가와 함께 영화로 소통하며 깊이 있는 영화 담론의 장을 마련했다. 영화에 집중하는 프로그래밍을 위해 신설한 '영화로의 여행' 또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세계적인 감독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 특별전은 연일 매진되며 실험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이밍량 감독과 이강생 배우가 함께하는 '행자 퍼포먼스'가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진행되며 관객들의 큰 관심을 모았으며, 특별전 기자회견을 통해 행자 연작의 11번째 신작을 전주에서 촬영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혀 기대를 모았다.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



선순환을 이룬 전주프로젝트

전주프로젝트의 성과도 돋보이는 한해였다. 2023년 로이스 파티뇨 감독의 <삼사라>에 이어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투자제작 된 벤 러셀 감독의 <다이랙트 액션>이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인카운터스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작년 신설된 워크인프로그레스 선정작 <미망>, <양양>, <담요를 입은 사람> 3편 모두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 선정됐다. <미망>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었으며 최근 국내 개봉 준비를 시작해 영화관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전주에서 투자한 영화들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다시 전주로 돌아와 관객을 만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며 전주가 독립영화 '생산'의 기지임을 꾸준히 입증하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도 187개 프로젝트가 공모에 응해 16개 프로젝트에 각종 지원을 제공했다. 영화제 기간 중 워크인프로그레스 비공개 시사에는 4개 작품이 참여했다. 이중 전주 지역 감독인 성승택 감독의 <어머니의 가계부>가 배급지원금을 받게 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제경쟁 대상 <메이저 톤으로>(위), 한국단편경쟁 대상 <작별>



담론 생성의 장으로 나아가기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아닌, 영화 사이의 맥락에서 다양한 담론을 생성하고 영화인들 간의 소통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 신설된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 부문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위축된 지역독립영화계에게 힘을 더하기 위해 전국 8개 지역의 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지역에서 제작된 장편 6편, 단편 8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했다. 또한 2024 전주포럼에서 '2024 한국독립영화 연속 포럼'을 개최하며 지역독립영화인의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했다. 


작년 국내 영화제 최초로 시작된 '배리어프리 특별전'은 더욱 발전하여 돌아왔다. 전년도 단편영화 수상작을 선정하여,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제작비 지원을 통해 제작된 작품을 5회차 상영했다. 올해는 특별히 음성해설 자막과 함께 수어 통역 영상까지 삽입하여 청각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높였으며, 비장애인 관객에게도 새로운 관람 문화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픽사 애니메이션 OST 오케스트라 공연




지역축제로서의 영화제

영화제 기간 지역민들은 전주 시내 곳곳에서 열린 부대행사를 통해 영화제와 함께했다. 지난해 스타워즈에 이어 올해도 디즈니와 함께 '픽사 in 전주 with <인사이드 아웃2>'은 큰 호응을 얻었다. 바로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한 '전주씨네투어X마중'은 큰 관심을 모으며 6회차의 관련 프로그램이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10주년을 맞이한 '100 Film 100 Posters' 전시 또한 팔복예술공장에만 2만 2천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전주씨네투어X산책'과 골목상영, 지역뮤지션들의 버스킹 공연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이어지며 지역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영화제의 역할을 공고히 했다.


줄어든 예산으로 인해 부대행사들이 축소될 위기였으나 전주시 관광거점도시 사업과의 연계와 특별 후원회 결성 등을 통해 외형적인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영화제의 디자인 굿즈가 매진되고 굿즈샵에는 '오픈런'을 하는 모습까지 이어지며 수익 사업을 통한 재정 자립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