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목소리들’ 상영 GV   2024.6월호

침묵으로 기억해 온 역사, 목소리를 내다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4월 3일을 떠올려본다. 1년 중 평범한 하루지만, 누군가에게 이 날은 70여 년 동안 가슴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아픈 역사다. <목소리들>(감독 지혜원)은 제주 4.3을 겪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로 그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특별한 기교나 웅장한 연출 없이, 깊숙이 묻혀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담담히 꺼내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고정자, 김용열, 김은순, 홍순공 4명의 할머니가 더듬는 목소리로 채워진다. 눈앞에서 언니를 잃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할머니, 죽음의 행렬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할머니, 창으로 일곱 번을 찔리고 살아남은 할머니까지. 이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시각으로 4.3사건의 처참한 이면을 마주한다. 이 목소리가 세상 밖에 나오기까지 왜 이리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지난 2000년,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국가가 인정하는 희생자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자, 수형자로 규정되었다. 여성이 겪은 인권 유린은 그 범주 안에 들기 어려웠다. 몸이 아닌 마음에 남은 상처와 정신적 트라우마를 인정받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들>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도, 연구되지도 않았던 역사 속 여성들의 이름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충분한 의미를 남긴다. 


“나한테 말 걸지 마라”며 고개를 젓던 김은순 할머니는 영화의 후반부에 접어들며 자신의 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보인다. 여전히 70년 전 고통에 머물러 눈물을 삼키는 장면에 꾹 참아온 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힘겨운 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냈고 여전히 제주의 땅을 지키고 있다. 지혜원 감독은 “우리 제주”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한다. 어딘가 외롭게 들리는 말이지만, 강인하게 버텨온 할머니들의 삶이 이 말속에 녹아있는 듯하다.





<목소리들>은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되어 관객들과 만나며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의 다른 역사에 비해 비교적 조명되지 않았던 제주 4.3사건을 국내 및 해외 관객들에게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작품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굵직하게 활동해온 김옥영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기획될 수 있었다. 긴 시간 봉인된 침묵을 깨기까지, 쉽지 않았던 과정에는 영화 속에서 안내자가 되어주었던 조정희 연구자와 4.3연구소를 오랫동안 이끌어왔던 허영선 시인의 도움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신원을 알 수 없는 그날의 유해 270여구가 목소리를 감추고 있다. 4.3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은 지금도 진행 중인 현재의 역사이며, 제주에 한정된 지역사가 아닌 모두가 같이 생각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