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공간  2024.8월호

촛불을 들고 자연을 노래한 시인

: 부안 석정문학관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가진 부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생거(生居)부안'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태어난 한 시인은 일평생 시와 함께 살며 자연을 노래했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촛불」 등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신석정 시인이다. 청년 시절 1년 남짓한 상경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지역에서 살며 후학 양성과 창작에 힘썼던 시인. 아직도 부안 곳곳에는 석정의 흔적이 남아있다.


부안 읍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동네 선은리, 석정이 살았던 '청구원'이 있다. 푸른 언덕 위의 정원을 뜻하는 청구원은 그가 1933년 귀향하며 마련한 작은 초가집이다. 1952년 전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많은 문학가들과 교우하며 『촛불』, 『슬픈 목가』 등 초창기 대표적인 시집을 써 내려갔다.


석정문학관은 청구원 바로 맞은편에 자리해있다. 대표 시집부터 약력, 소장품, 시집, 교우 관계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일생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으며, 생전 시를 쓰던 서재도 함께 재현되어 있다. 모든 시집을 직접 만지며 읽어볼 수는 없지만 디지털 화면을 통해 그의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 이외에도 다양한 글을 썼던 그는 방대한 분량의 일기도 남겼다. 1958년 이전의 것은 소실되었으나 16년분의 「비사벌초사 일기」는 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석정생가 청구원 


비사벌초사에서(중년시절)



석정의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또 있다. 석정이 전주로 이사한 후 말년까지 살았던 남노송동의 <비사벌초사>다. 석정은 이곳에서 『빙하』, 『산의 서곡』, 『댓바람 소리』 등 세 권의 시집을 집필했다.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독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석정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가시인이다. 하지만 문학관은 목가시인이 아닌 '저항'의 석정도 볼 수 있도록 이끈다. 그는 마냥 자연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시인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제의 원고청탁을 거절했으며, 해방 전까지 절필했다. 광복 이후에야 그간의 작품을 묶어 시집 『슬픈 목가』를 출간했다. 이 시집엔 목가 세계를 버리고 일제 말기 숨 막히는 어둠을 표현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1967년 발표한 시집 『산의 서곡』에서는 독재 정권하에서 시로서 저항하려 했던 그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석정의 시 세계를 품고 있는 문학관은 석정의 시를 새롭게 해석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확장해 가고 있다. 신석정 시를 가사로 창작 음악을 만드는 '신석정창작음악제'도 그중 하나다. 작년 처음으로 진행된 이 음악제에는 현대의 창작자들이 참여하며 100개가 넘는 창작곡이 쏟아졌다. 대상인 '다올'의 「임께서 부르시면」을 비롯해 6개의 곡이 수상했으며, 이를 기념한 전시 <석정의 노래_듣는 시, 보는 시, 만지는 시>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석정문학관에서 열렸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듣게 되는 음악은 이들 수상곡들이다. 이어지는 수상자들의 인터뷰 영상에선 그들이 어떻게 시대를 뛰어넘어 석정의 정신을 공유하고 교감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전시실 벽면에는 점자로 표현한 시가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석정의 시를 만지고, 들을 수 있다. 올해도 제2회 음악제는 신석정 서거 50주기를 맞이하여 진행된다.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젊은 시인 이음 씨는 한 달에 한 번 석정의 시를 인용한 편지 '석정이음'을 쓰며 석정을 오늘의 독자들 앞에 불러낸다. 시집 「복숭아 판나코타식 사랑」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문학관에 작업실을 두고 석정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석정을 기리고 있다. 부안 주민들과 함께하는 생애사 글쓰기 프로젝트 <나의 삶, 한 권의 책>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들은 대부분이 농촌에서 태어나 이곳을 지키고 살아온 주민들이다. 오는 연말에는 이들이 쓴 글을 엮은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석정문학관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 63 ㅣ 063-584-0560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