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中, 『질마재 신화』
미당 서정주의 고향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마을. 미당이 1975년 발표한 시집 『질마재신화』는 이 작은 마을에 내려오는 설화와 미당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쓰였다. 어린 서정주는 외가가 친가와 가까이 있어 외할머니와 자주 놀았다. 그 시절, 외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옛이야기들은 훗날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시들로 다시 태어났다.
질마재에는 미당의 생가를 비롯해 「간통사건과 우물」의 우물, 「소자 이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에서 오줌 누어 키우던 무밭 등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미당시문학관은 질마재마을 안쪽, 폐교된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에 만들어졌다. 학교 건물의 중간 부분을 잘라 탑처럼 5층 전시동을 만든 문학관의 설계는 건축가 김원이 맡았다. 수직으로 솟아 있는 전시동은 문학관 뒤편의 소요산과 닮았고, 수평으로 뻗어 있는 학교 건물은 서해를 닮았다. 전시는 1층부터 5층까지 가족, 서재, 친구, 저술, 임종 등 그의 문학세계와 생애가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다. 전시동을 오르는 벽면에는 세계 명산의 사진이 있다. 노년에 산 이름을 암송했던 그의 이력 때문이다. 옥상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질마재마을 전체가 훤히 다 보인다. 이어령 교수는 이곳에 올라 '바람의 전망대'라고 작명했다. 학교 건물의 기획전시실에서는 계절마다 미당 시 전시회가 열린다.
미당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문학관에는 미당의 역사적 과오를 알 수 있는 작품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뒤에는 항상 '친일 시인'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그는 일제강점기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다수의 친일문학을 발표했다. 일제의 전쟁과 침탈을 미화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와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태도를 견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했다.
2001년 문을 연 미당시문학관은 최근 전환점을 맞았다. 작년 문학관 옆으로 '질마재 시인마을'이 새로 생긴 덕분이다. 다양한 시집이 구비되어 있는 '질마재시인책방'과 카페로 이루어져 있는 문화공간이다. 올해부터는 고창군이 아닌 미당이 교수로 재직했던 동국대학교의 미당연구소가 문학관의 운영을 맡았다. 미당문학제를 비롯하여 시 낭송회, 작은음악회, 전시회, 강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당시문학관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로 2-8 ㅣ 063-560-8058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