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물드는 공간  2024.8월호

시와 사람이 모이는 사랑방

: 시집책방 조림지 





전주에는 10여 개의 독립서점이 문을 열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지역과 책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최근 또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독립서점이 등장했다. ‘시집’을 매력으로 내건 시집 전문 독립서점 ‘조림지’다. 이곳은 지난 3월, 누구나 시를 읽고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조림지는 나무를 길러 숲을 이루는 곳을 말한다. 나무들은 조림지에서 성장해 더 넓은 곳으로 옮겨지기도 하고 그 자리 그대로 숲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바로 나무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시의 매력을 느끼고 더욱 단단한 시 세계를 또 다른 곳에 옮겨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공간이다. 


책방지기 천기현 씨는 혼자 이런저런 문장을 끄적이다 시를 짓게 되고 그렇게 시를 짝사랑한지 4년째에 접어들던 해, 시로 가득 찬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다. 일곱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작고 얇은 시집들이 모여 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책장마다 듬성하게 꽂힌 시집을 구경하다 보면 벽에 붙은 시 한편이 눈에 띈다. 조림지에서는 매월 한 편의 시를 정해 ‘조림지의 시’라는 타이틀로 소개한다. 중요한 건 이 시들은 모두 세상에 없던 시라는 점이다. 기존의 좋은 시를 골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시인들에게 원고료를 지급하고 신작시를 받아 전시하고 있다. 오직 여기서만 읽을 수 있기에 한 줄 한 줄 더욱 소중히 읽힌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에는 시모임이 열린다. 신청자를 따로 모집하기 보다는 책방의 문을 열어두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시를 나눈다.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물론, 단 한 명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인원이 아무리 적어도 시모임은 진행된다. 매주 이 시간에 조림지를 찾으면 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들은 함께 좋아하는 시나 직접 쓴 시를 낭독하며 감상을 나눈다. 책방지기 역시 시를 쓰는 한사람으로서 이 순간을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꼽는다. 




조림지 책방지기 천기현 씨



글 쓰는 주인장 덕분에 조림지에서는 갓 나온 시 한편을 구매하는 일(?)도 가능하다. 1500원을 내면 그 자리에서 즉흥시를 지어준다. 손님이 정한 제목에 맞는 내용을 써주는 식이다. 책장 위 높은 곳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 ‘시가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포부에 걸맞은 멋진 이벤트다. 그는 지금까지 쓴 시들을 엮어 시집을 내기도 했다. “사장님이 낸 시집은 없냐”고 손님들이 물을 때마다 답하기 부끄러워 시집을 만들었단다. <골렘>이라는 제목의 시집은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유명 시집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소년을 꿈꿨을 것 같은 주인장 천기현 씨는 사실 기계를 전공했다. 바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했다. “내가 평생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뭘까?”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였다. 그러나 시인처럼 치열하게 쓸 자신은 없었다. 자신처럼 시가 좋아 서성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다보니 지금의 조림지가 탄생했다. 시가 그립거나 궁금한 사람,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조림지는 열려있다. 그는 좋아하는 시인의 책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이 시인의 시는 짧은 문장으로 사람을 멀리 데려가는 힘이 있다”고. 






조림지 시집전문 독립서점

전주시 완산구 충경로 30 

0507-1353-7433 ㅣ 매주 일, 월 휴무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