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섭 작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깨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 무채색의 사진 속에는 도시의 어두운 부분들이 담겨있다. 사진작가 소영섭의 시선이다. 작가는 방치된 도심의 풍경, 재개발을 앞둔 구도심을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완산동을 시작으로 팔복동과 서신동, 교동, 태평동 등 전주의 오래된 동네를 두발로 찾아다니며 지역 아카이빙을 진행했다. 그 기록들을 마주하면 마치 도시의 뒤편에 숨어있는 민낯을 보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진한 화장을 해도 맨얼굴에 본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작가는 도시가 가진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꺼내 보여준다.
사진이 건네는 질문
한쪽에는 파릇파릇 자라나는 녹색풀이, 다른 한쪽에는 벗겨진 회색 벽이 나란히 찍힌 사진.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폐가와 그 안에 남아있는 손때 묻은 물건들. 작가가 소개하는 많은 사진 중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진이 있다. 폐건물 조각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는 모습 뒤로 저 멀리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2021년 촬영한 이 사진은 신도시 계획으로 세워진 전주 에코시티와 사라져가는 구도심의 흔적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그는 이러한 의도적인 시각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옛것과 새로운 것의 대조를 통해 빈부격차를 상기시키기도 하고, 자본주의에 밀려나 버려질 수밖에 없던 집, 일상, 삶의 흔적을 돌아보게 한다. 좋은 질문을 위해서는 꼼꼼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듯 그 역시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공들여 바라보고 셔터를 누른다.
“저는 한 장소를 열 번 정도 찾아가서 봐요. 계속 탐색하고 관찰하면 갈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멋있게 찍는 것보다 잘 관찰하는 게 더 중요해요. 한 컷의 메인사진을 뽑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여러 번 찾아가는 습관이 필요한 거죠.”
주거단지-놀이터, 2023 ©소영섭
주거단지-회상, 2023 ©소영섭
결국은 사람을 바라보는 일
구도심을 기록하기 이전에 그는 상업사진을 다루는 작가였다. 20여 년 전, DSLR 카메라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 취미로 찍던 사진은 운명처럼 업이 되었다. 지역 축제 현장이나 제품 촬영 등을 주로 해오던 그는 2019년 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하며 사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카메라 너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며 작업세계는 자연스레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키워드가 ‘구도심’이었다. 전주 토박이로 자란 그는 어릴 적 보았던 완산동이 변해가는 모습을 목격하며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다.
“작업의 주제를 설정하고 공부를 하면서도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도시가 읽히기 시작하고 스토리가 정리되더라고요. 풍경을 담아내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이 있어요. 인물까지 도달하는 일이 매번 어렵긴 하지만 서로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작업 방식은 넓은 범위의 풍경에서부터 오브제, 인물로 범위를 점점 좁혀간다. 그러나 실제 주민과 동네 어르신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의 사진에 인물이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동네에 갈 때마다 시커먼 카메라 대신 맛있는 간식거리를 들고 간단다.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 작가는 오래된 동네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
Diaspora ©소영섭
일상처럼 기록하기
그는 서완산동에 위치한 용머리 여의주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이곳 역시 나이를 많이 먹은 전주의 구도심 중 하나다. 지난해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공동이용시설이 들어서며 입주 작가로 함께하게 됐다. 이제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몇 걸음만 옮기면 동네에도 낡은 주택과 폐가들이 보인다. 도시의 사라져가는 장면들을 기록하는 일은 이제 특별한 작업이 아닌 그의 일상이다. 늘 숙제처럼 여겨지던 ‘사람’에 대한 고민도 이 마을에 녹아들며 조금씩 해결해나가고 있다. 주민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그는 동네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결국 사람을 향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동네마다 이야기 거리가 정말 많아요. 저만의 작업도 중요하지만, 결국 주민들과 만나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콘텐츠에 정감이 가는 것 같아요. 그런 작업들이 재밌기도 하고요. 깨끗하고 화려한 건물과 공간들은 어느 지역에나 있잖아요. 전주만의 구도심이 가진 매력을 살려서 깔끔하게 정돈하고, 문화를 유입하고, 청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사라져가는 동네에도 계속해서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복작복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도록 소영섭 작가는 앞으로도 기록을 이어갈 것이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