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힘 작가
7080 세대 중 다방에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시절 다방은 모두의 약속 장소였다. 연인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답게 안부를 물었다. 원두와 설탕, 프림을 황금 비율로 섞어 만드는 믹스커피의 낭만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방 대신 대형 프랜차이즈와 유행하는 감성 카페로 향한다. 다방에 담긴 추억과 낭만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지금, 다방의 시간을 붙잡는 사람이 있다. 작가 오힘이다. 그는 남겨진 전주 원도심의 다방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전주 다방에서 만나>. 이 책 속에는 어떤 낭만이 담겨있을까.
"90년대 이후 태어난 친구들은 다방을 잘 모릅니다. 부동산 어플 이름 쯤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재미있는 발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어요. 외국에 여행을 가서는 그 지역의 오래된 가게들을 일부러 찾아다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정작 그런 것들에 소홀할까요."
<전주 다방에서 만나> 내지 ©오힘
다방커피를 시키고 오힘 작가와 마주 앉았다. 인터뷰 장소는 중앙다방.
작가는 오래된 문화 공간인 다방이 잊혀지는 게 아쉬웠다. 그 정다운 문화를 기록하고자, 2017년부터 전주의 다방들을 찾아다녔다. 처음은 '서로' 낯설었다. 젊은 여자가 들어서니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차차 익숙해지니 다방 사람들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오늘날의 다방은 오래된 만큼 고요하고도 정겨웠다. 그리고 자유로웠다. 손님은 대부분 매일 출근하듯 찾는 단골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익숙하게 티비를 보거나 장기를 둔다. 사장님(?)은 한쪽에서 나물을 다듬는다. 점심때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다방의 풍경은 저마다 비슷한 듯 달랐다. 파크다방은 시장 근처에 있어 여자 어르신들이 많다. 남문다방은 바로 옆에 목욕탕이 있어 깨끗하게 세신을 하고 냉커피 한 잔 마시기에 좋다.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약속다방과, 신식 카페와 옛 다방 모습이 겹쳐 보이는 삼양다방까지. 모든 이야기들을 필름 카메라로 찍고, 글로 써내려갔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아 2019년 책 <전주 다방에서 만나>를 냈다. 남부시장, 중앙시장, 모래내시장 등 3개의 시장을 중심으로 23개의 다방의 이야기가 모였다.
최근 다시 찾은 전주 다방은 달라진 모습이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사장님이 바뀐 곳도, 폐업을 한 곳도 있었다. 단골 어르신들이 많이들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려왔다. 작가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장님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책 속의 사진을 보고 누구네 아버지인데 방금도 왔다 가셨다며 변함없는 근황을 전해주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을 더해 2024년 <전주 다방에서 만나>의 개정판이 나왔다. 이를 기념하여 지난 7월 20일에는 책방 똑똑과 함께 북토크를 진행했다. 일반적인 북토크와는 다르게 참가자들과 함께 다방을 돌아다니며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감자를 쪄내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카페를 가면 실내에 있어도 밖에 나와 있는 기분인데, 다방은 정말 쉬기 위해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라고.
중앙다방에서 진행한 책방 똑똑 북토크
나의 지역을 나의 시선으로
오힘 작가는 전주 토박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후 서울에서 일하다 전주에 내려왔다. '오힘'은 필명이다. '오래오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라는 뜻이다. 지역 영화제에서 모더레이터로 활동하는 등 출판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 영역에 관심이 많다.
그의 최근 관심사는 목욕탕이다. 그 시절 주택의 화장실은 지금처럼 따뜻하게 목욕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대신 주기적으로 목욕탕에 가서 몸을 녹이고, 때를 밀었다. 시원한 기분으로 맥반석 계란과 식혜를 먹는 것도 필수였다. 하지만 아파트가 보급되고 집에서도 욕조에서 씻을 수 있는 환경이 되자 목욕탕 문화는 점점 사라져갔다. 남아있던 목욕탕들마저도 코로나를 겪으며 운영이 힘들어졌다. 남은 곳들이라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지역 곳곳의 목욕탕을 취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고 남기는 것. 생을 함께했던 것들을 내 시선으로 기록하는 것. 어쩌면 나의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의미 있지 않나요? 그대로 있어 줘서 후대의 사람들이 같이 향유하면 좋지만,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어요. 이런 기록이 사소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소한 건 힘이 있거든요. 소시민으로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하나하나의 기록에 힘이 깃들 거라고 믿어요."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