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간   2024.10월호

아이들이 떠난 교실, 칠판 대신 그림이 걸렸다

: 남원 수지남초등학교 ─ 수지미술관


<러브홀릭>전 곽정우 작가 전시장 전경



화가이자 미술 교사이던 한 남자는 꿈이 있었다. 바로 퇴직 이후 미술관을 세우는 것. 오랜 교직 생활이 끝나자 전국의 여러 도시들을 돌며 꿈의 공간을 찾아다녔다. 교사로 일했던 까닭이었던지 유난히 폐교에 마음이 쓰였던 그는 지리산 자락, 남원의 한 초등학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박상호 화백과 남원 수지미술관의 이야기다. 2014년에 수지면에 내려와 옛 수지남초등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1년 만인 2015년 11월 동네의 이름을 딴 수지미술관을 개관했다.


수지미술관에 도착하면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널다란 운동장이 먼저 반긴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과거 교실이었을 공간은 전시실로 변했다. 넓게 낸 창문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을 꿈꾸며 만든 창문이다. 덕분에 무단침입(?)한 청개구리가 전시실 한편에서 발각되기도 한다. 인터뷰를 함께 한 박준현 학예실장은 휴게 공간이라고 쓰인 작은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는 박상호 관장의 아들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학예사로 일하다 수지미술관이 개관한 후 이곳에 왔다. 관람객이 오면 이렇게 휴게 공간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고, 전시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함께 들려준다.




수지미술관 전경과 중정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시 <Love Holic>는 2년마다 개최되는 특별전이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사랑의 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다양한 사랑을 주제로 활동 중인 서양화가 곽정우, 한국화가 박지혜, 조각가 최일호 세 명의 작가를 만난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이외에도 남원을 재조명하는 <남원의 재발견>,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된 작가들을 초대하는 <미술교과서 산책전> 등 연간 4회 이상의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전 전시 도록들 사이로 눈에 띈 <남원의 석장승>전은 그 일화와 의미가 특별하다. 김호경 사진가와 함께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 않던 남원의 석장승들을 산과 들을 헤쳐가며 기록했다. 이렇듯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아카이빙하는 소중한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수지미술관이 생기기 전 남원에는 이렇다 할 미술관이 없었다. 소장작품 100점 이상, 학예사 1명 이상, 100㎡ 이상의 전시실·수장고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부여받는 제1종 사립미술관은 남원에서는 수지미술관이 최초다. 박 학예실장은 이곳이 갤러리가 아닌 '미술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관이 아닌 자체 기획전으로만 전시를 꾸리며, 작품 구입 문의가 있을 경우 작가의 연락처를 직접 전달해 준다. 상업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대신 성인 기준 3천 원이라는 소정의 관람료를 받는다. 계속해서 지역에 공익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신념이다. 




2024 러브홀릭 전시 해설(왼쪽)과 현재 전시 한정무 야외조각전-환경예술놀이터(24.5.1~10.27)




문턱이 낮은 미술관을 지향하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도 자주 벌인다. 간단한 캐리커처 수업부터 아이들과 축구교실을 열고 함께 공을 디자인했던 '아트 사커', 운동장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판매했던 아트프리마켓 '수지 장터'까지. 2019년 진행된 '미술관의 밤'에서는 야외 전시와 공연에 디너 파티를 더해 주민들과 함께 예술로 놀았다. 초리 주민들이 모은 마을 사진에 스토리를 덧입혀 영상을 만들고, 이장님이 나레이션을 더해 만들었던 일명 '초리시네마'도 뜻깊다. 현재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림 교실을 운영하며 소통하고 있다. 


현재 운동장에는 한정무 작가의 야외조각전 <환경 예술놀이터>가 전시 중이다. 아이들이 직접 뛰어놀아야 완성되는 작품이나, 요즘 수지면에는 아이가 없다. 올해 수지중학교마저 폐교되며 수지면에 남은 학교는 수지초등학교 단 하나다. 수지미술관도 점점 활력이 사라져가는 동네의 모습을 체감하고 있다. 박 학예실장은 수지면의 문화적 자원을 활용해 일종의 문화벨트를 형성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전한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고택 '몽심재', 돌모자이크 벽화가 있는 '산촌마을' 등 인근 문화 자원들과 함께 수지면을 문화가 피어나는 동네로 만들 계획이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