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예술거리의 어제와 오늘  2024.12월호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서점

: 홍지서림




전주를 지켜온 서점은 전주 동문길의 '홍지서림'이다. 창업주 천병로 씨가 1963년 작은 판자방으로 시작한 이 서점. 그 시절 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종합서점으로 규모를 키워 전주를 대표하는 서점이 됐다. 그러나 1999년 IMF를 맞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폐업할 위기에 처한 홍지서림을 다시 살려낸 사람은 소설가 양귀자 씨다. 학창 시절을 전주에서 보내며 홍지서림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던 그는 홍지서림을 인수해 오늘까지 지켜오고 있다. 운영을 맡고 있는 양계영 대표는 그의 장조카다. 


양 대표는 서점을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홍지서림을 맡아달라는 고모의 부탁을 듣고 고민 끝에 서울에서 내려왔다. 당시 홍지서림은 전산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전산을 도입하며 장서들을 정리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아중점(2000년) 효자점 (2002년) 송천점(2008년) 분점을 개업했다. 강성수, 이미희 부장 등 홍지서림을 인수했을 때부터 일해온 직원들은 어느덧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홍지서림을 지키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홍지서림의 매대는 지도와 사전이 사라진 것 이외에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만 파는 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지서림은 문학, 정치, 역사부터 의학이나 농업 등 각종 전문 서적이 1, 2층의 서가를 모두 채우고 있다.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서적과 참고서도 잘 갖추어져 있다. 3대가 함께 방문해도 좋을 여건을 갖고 있는 셈이다. 아직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손님에게는 더욱 반가운 공간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던 ‘그 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홍지서림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향문사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농업과 관련된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거든요. 시골에서 옛날 분들이 참고해서 공부할 정도로요. 그런데 향문사 책을 취급하는 서점은 전북에 홍지서림 딱 하나 있어요. 그 책을 구하기 위해서 무주, 진안 이런 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세요. 1년에 딱 한 권 팔리더라도, 그런 분들을 위해 갖춰두는 거죠.


사실 수익을 생각하면 들여오면 안 되는 책들이다. 하지만 양 대표는 그것이 지역의 향토서점인 홍지서림의 의무이자 역할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사랑으로 자라난 서점이니 지역사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왼쪽 위부터)1960년대 창업당시 사진, 1980년대의 홍지서림, 1990년대 연말의 서점 풍경



물건 하나를 주문할 때도, 홍지서림 주소를 말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많다. 홍지서림을 아껴주는 그 마음들에 양 대표는 보람과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마음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혹여나 좋지 않은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면 시민들에게 폐가 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는 양 대표는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 


사실 취재기자도 홍지서림키즈(?)다. 어렸을 적 효자동의 홍지서림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었던 추억이 많다. 책을 사는 건 어쩌다 가끔이었지만 한참을 눌러앉아 책을 읽고만 있어도 눈치받았던 기억은 전혀 없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지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향토서점이란 이런 역할이 아닐까 싶다. 아이부터 청소년, 중장년층, 노인까지 모든 사람을 모두 품어주고 일상에서 책과 닿을 수 있게 하는 것. 홍지서림은 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전주를 대표하는 서점이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