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신
환경 문제에서 늘 주목받는 것 중 하나, 해양쓰레기다. 플라스틱을 삼킨 고래부터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바다거북까지. 우리는 바다가 병들어가는 과정을 다양한 장면들로 실감하고 있다. 군산에서 활동 중인 작가 김덕신 씨는 넓은 바다를 마주하며 그 현실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을 하기로 했다. 파도에 밀려온 무수한 해양쓰레기들을 작품의 재료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바다를 지키는 ‘환경작가’가 되었다.
환경작가의 길을 연 섬과의 인연
고군산군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섬 비안도. 작가는 2010년 무렵 이곳의 작은 초등학교 미술 강사로 섬과 인연을 맺었다. 꿈에 그리던 ‘섬마을 선생님’ 생활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선착장에서 학교로 가는 길목, 바다 앞을 지날 때면 반질반질한 몽돌이 ‘도르르’하고 파도에 구르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돌 구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바다에 쓰레기가 늘고 펄이 형성되며 돌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 쓰레기들을 모아 바다에 버렸고 자갈밭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일도 자주 목격했다. 주민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그는 먼저 행동하는 일을 택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다의 쓰레기를 주우며 그들이 동참하고 변화하기를 기다렸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쌓이는 페트병부터 유리조각, 낚시도구, 조개껍질 등 버려진 것들은 자연스레 작업의 재료가 되기 시작했다. 그가 환경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첫 걸음이었다.
하루는 2학년 아이가 묻는 거예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 왜 환경수업을 안 들어요?’. 아이가 집에 과자박스나 비닐봉투를 모아두면 엄마는 그걸 쓰레기라고 다 버린대요. 그래서 집에서는 뭘 만들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 아이들의 부모님한테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을 하다가 전시를 열기로 했어요. 저랑 학생들이 해양쓰레기로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가졌죠. 이 전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환경작가의 길을 가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과정들을 지나면서 의도치 않게, 자연스럽게 환경작가로 불리게 된 거죠.
2019년, 비안도와 야미도의 세 아이들과 함께 한 첫 업사이클링 전시 <섬·섬옥수>는 그가 환경작가로서 정체성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해 안타깝게도 비안도초등학교가 폐교되며 그의 섬마을 선생님 생활도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작가는 일주일에 한두 번 꼭 바다에 나간다.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재료를 찾고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버려진 어망(위)과 낚시밥통 설치작품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로
군산 개복동의 고요한 골목에 작가는 작업실을 열었다. 붓이나 물감은 보이지 않고 쓰고 버린 플라스틱 병과 비닐봉투들로 채워진 공간이 묘한 재미를 안긴다. 그는 이곳에서 개인 작업에 몰두하며 매해 새로운 주제로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부스럭 부스럭>, <비닐의 화원>, <여인의 향기> 등 환경과 예술을 연결한 여러 전시들을 선보여 왔다. 폐비닐로 화려한 꽃을 피우기도 하고 페트병을 오리고 붙여 민화를 재해석하기도 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표출하기 위해 폐비닐이 지닌 본래의 색만을 활용해 우리 전통색인 오방색을 작품 곳곳에 숨겨놓기도 한다. 최근에는 막걸리 병을 소재로 독특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넓은 캔버스 위에 병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는 방식이다. 구부러진 조각들은 빛을 담아내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색을 표현해낸다. 외형적인 굴절이 만드는 이러한 의미 너머, 작가는 사회적인 메시지 또한 전하고 있다.
페트병 한 조각 한 조각이 만들어내는 굴절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굴절과 왜곡된 부분들을 빗대고 싶었어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왜곡된 현실을 마주하고 살잖아요. 요즘의 상황은 더더욱 그렇죠. 이런 현실에 저는 작품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작가는 아름다움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잖아요. 사회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다 보니 현실을 대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유리벽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업실은 동네의 방앗간이기도 하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객과 주민들은 그의 공간을 종종 찾는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환경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나마 챙기고 돌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가끔은 동네 사람들이 박스 등의 폐품을 모아 작업실 앞에 가져다놓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지만 작가에게는 이만한 선물이 없다. 이렇게라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이 반갑다.
요즘도 바닷가에 가면 쓰레기가 넘쳐나요. 거기서 재료가 될 만한 것들을 선별적으로 주워오는 것도 마음이 아픈 일이죠. 환경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짐이 생기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는 모든 쓰레기를 다 수거할 수 없으니 죄의식을 가지며 일부만 가져올 뿐이죠. 나 혼자라도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함께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변화는 분명히 일어난다고 믿는다. 작가 스스로 매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업사이클링 작업과 더불어 교육 활동의 폭을 넓히고 싶은 바람이 있다. 아이들 중심으로 해왔던 환경 교육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 길쌈을 하고 멍석을 짜며 살았던 어르신들의 기능을 살려 환경과 연결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생활쓰레기와 그들의 기능을 접목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플라스틱과 같은 폐자원을 친환경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등 작은 쓰레기 줍기에서 시작된 그의 환경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힘을 키워가고 있다. 언젠가 바다를 찾는다면 눈앞의 쓰레기 하나를 주워보자. 작가가 그랬듯, 그 작은 행동이 큰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