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의 가치 있는 변신  2025.2월호

고물이 보물이 되는 기적

정크아티스트 박인선


박인선



업사이클이나 환경예술 등의 용어가 쓰이기 전, 일상의 폐품이나 잡동사니를 소재로 하는 미술은 흔히 ‘정크아트’라 불렸다. 새활용 미술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정크아트는 1950년대 산업화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거대한 기계의 부품과 쓰레기들이 넘쳐났고 예술가들은 이러한 시대를 고발하기 위해 버려진 것들을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크아트가 출발한 7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현실은훨씬 비극적이다. 과거 정크아트를 탄생시켰던 예술가들과 같은 마음으로, 많은 정크아티스트는 현시대의 위기를 더욱 다양한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주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버려진 고철에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내는 사람, 박인선 씨를 통해 매력적인 정크아트의 세계를 만났다. 


일상과 환경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기록  

낡은 주전자로 만들어낸 가족의 모습, 자동차 부품이 모여 탄생한 황소, 문고리 모양의 부리를 가진 새까지. 작가의 작품은 주로 생명력을 지닌 인물이나 동식물을 모티브로 한다. 사용되는 재료 역시 무궁무진하다. 고물상에 팔려온 폐품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장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매일 오가던 덕진공원이 새 단장을 하던 날, 대량으로 버려진 폐목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쓸모를 다한 나무 조각들은 작업실의 의자로, 작품의 재료로 다양한 변신을 했다. 그의 작품 중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말>은 제작하는데 무려 1년의 시간이 걸렸다. 필요한 재료를 구해 바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각 형태에 맞는 재료를 발품 팔아 구해야하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재료로 한다는 이유로 정크아트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이처럼 매 과정이 까다로운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가족 2(위), 알바트로스가 위험하다




우리가 생활에서 쓰는 물건들도 자세히 보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요. 일반적인 재료처럼 정해진 비례와 균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모양이 나오는 게 정크아트의 매력이죠. 특히 그 속에는 다양한 삶의 애환이 들어있잖아요. 지금은 많이 쓰이는 물건이라도 10년, 20년 후에는 더 이상 쓰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작업이 우리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그는 환경을 단순한 소재로 삼는 것을 넘어 작품 그 자체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지난해 대한민국환경사랑공모전 정크아트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알바트로스가 위험하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로 미국의 환경작가 크리스조던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접했다. 그리고 큰 충격과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날개를 지닌 채 수십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새 알바트로스. 영상 속 알바트로스는 뱃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여러 종류의 폐품을 활용해 알바트로스가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새들이 자유로이 비상하는 날을 꿈꾸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작가만의 아름다움으로 담아냈다.


정크아트로 열린 삶의 새로운 문 

정크아트를 만나기 전 작가는 오랜 미술교사 생활을 거쳐 작은 사업을 일구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미술작업에 대한 열망이 꿈틀댔다. 자신만의 작업을 고민하던 그는 가까운 폐차장에 찾아가 엔진부품들을 모았다. 투박하지만 직접 구한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내니 전에 없던 에너지가 솟구쳤다.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정크아트라는 용어조차 몰랐던 그는 작업을 통해 삶의 새로운 통로를 열 수 있었다.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며 그는 고물상 옆에 작업실을 세웠다. 재료를 찾아 자주 드나들던 고물상 사장님을 설득한 후 1년이 지난 뒤에야 승낙을 받아 마련한 공간이다. 가까이에 작품의 소재가 넘쳐나니 이만한 행운이 또 없다. 


어떤 일을 할 때 조금만 해보고 포기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지 않습니까. 저는 무엇이든 최소한 10년은 해봐야 그 재미를 깨닫는다고 생각해요. 정크아트 분야는 잘 팔리는 미술품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렇게 묵묵히 하다보면 내 작품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칭찬 한마디 들을 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풍요로운 만큼 비워내는 지혜   

쉽게 사고 버리는 요즘의 소비 현실을 작가는 하루하루 눈으로 실감하고 있다. 새것처럼 깨끗한 물건들이 갈수록 고물상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것을 작품에 활용했음에도 새것처럼 보이는 탓에 가끔 오해를 받는 일도 생긴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진 만큼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아직 제대로 비우는 법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와 같다. 


저는 사실 환경 운동가는 아니에요. 처음에는 예술의 소재로 접근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환경을 중심에 두게 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환경을 너무 앞세우면 본인이 진짜 원하는 조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묻곤 하는데요. 환경문제는 이제 모두가 알 듯 정말 심각한 상황에 왔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이제 나눠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질문과 공감을 던질 계획이다. 농악 등 우리 지역의 전통 문화유산을 정크아트로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도 꿈꾸고 있다. 작가는 믿는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무엇이든 버리기 전에 그 쓸모를 한번쯤 더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