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리, 최무용, 이정란
침대, 의자, 책상... 우리의 일상에 항상 함께하고 있는 가구들이다. 하지만 오랜 추억과 손길이 묻은 가구들은 낡거나 망가지고 때로는 유행이 지나 대형폐기물 딱지와 함께 거리로 내몰린다. 가구의 대부분은 원목이 아닌 코팅된 가공 목재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새로운 쓰임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소각되기 일쑤다. 얼마나 많은 가구들이 불에 태워 없어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헌 가구를 폐기하는 대신, 그들 헌 가구에 예술을 더해 새 가구로 바꾸는 일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조각가 최무용, 회화작가 박두리, 문화기획자 이정란 씨가 만나 결성한 '제로디렉션(zero-direction)'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뜻의 제로디렉션은 청년예술단체 '노마드'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2021년 가구 순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새롭게 만든 이름이다. 최 씨와 이 씨는 전북대 조소학과 선후배 사이, 박 씨와는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만났다. 각기 다른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버려진 가구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가구 구조대
제로디렉션은 서노송동 성매매 공간을 재생한 선미촌 리빙랩 사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선미촌 골목에는 성매매 업소들이 불법 폐기하고 간 가구가 많았다. 마침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것으로 작업하는 직업병(?)이 있는 조각가 최 씨가 가구 순환 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세 명 모두 전주문화재단의 탄소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프로젝트는 바로 시작되었다. 먼저 트럭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폐가구를 수거한 후, 최 씨가 해체 작업을 하면 이 씨가 세부적인 기획을 하고 박 씨가 채색과 마감으로 완성했다.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팀워크였다.
오래된 자개 수납장으로 만든 가구
서노송동에서 찾은 부서진 의자. 팔토시 공장의 폐기물인 자투리 섬유와 PVC로 새 쿠션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가구를 '구조'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예술로 숨을 불어넣어 가구로서의 삶을 연장시키는 일이란다. 마치 유기동물 구조 후 올라오는 글처럼, 가구마다 발견된 곳들의 주소와 당시의 상황을 모두 기록하여 전한다. 대부분 서노송동과 팔복동 등 산업단지가 있거나 재개발을 앞둔 곳들이다. 이들은 기획전 서문에서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가구들이 길가에 버려진 모습이 마치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생각됩니다. 우리들 또한 사회에 맞춰 성장하고, 일을 하다 필요가 없어졌을 때 교체되거나, 또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 늙어버렸을 때 마치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듯한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많은 가구가 이들에 의해 구조(?)됐다. 과거에는 좌식 생활이 주를 이루었기에 2000년대 이전의 가구들은 대부분 높이가 낮다. 이런 경우 다리를 추가로 붙여 입식 생활에 불편하지 않게끔 고친다. 아름다운 빛깔의 자개장은 이제 인기를 잃었다. 이 자개장들에 현대적 디자인을 덧입혀 전혀 다른 가구로 만들어내며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를 되새긴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자개장을 버리려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어요. 얼마 전 할머니와 사별하시고 자녀분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오랜 시간 함께한 가구들을 떠나보내고 계시대요. 자개장은 할머니께서 쓰시던 화장대였는데 정말 아끼면서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쁘게 잘 만들겠다고 말씀드리고 가져왔어요. 이런 사연이 있는 가구들은 기억에 많이 남고, 더 신경 써서 고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의 손길이 덧입혀진 폐가구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동안 작업한 가구들에 신작을 더해 매년 작은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를 찾은 관객이 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돌아가는 일도 많다. 한 번은 멀쩡한 가구에 디자인을 더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버려진' 것에 쓰임을 더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했단다.
예술로 전하는 선한 영향력
폐가구를 다시 활용하는 일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시트지, 합성목재, 유리섬유 등 다양한 물질로 구성되어 해체 과정 중 유해한 물질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들은 일상에서 버리는 대형 폐기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과 함께 폐가구 실험실을 운영했다. 10명의 시민들이 폐가구 수거부터 해체, 디자인, 제작까지 마치는 과정이었다. 제로디렉션의 멘토링과 함께 폐가구들은 길고양이 급식소, 자개농 테이블, 만년 달력 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익산 솜리예술마을에서 열었던 가구수리소 또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신청자가 못 쓰게 된 가구를 가지고 와 주문서를 작성하면 이들이 고쳐주는 식이었다.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처음 고친 가구가 입소문이 나며 마지막 날까지 쉴틈없이 일했다. 신혼 선물로 받았다는 장롱부터 고양이가 사용하는 캣타워까지 많은 가구가 수리소를 다녀갔다. 예쁘게 만들어주어 고맙다며 음료수를 한가득 사 왔던 한 신청자의 웃음이 눈에 선하다. 그때의 좋은 기억으로 올해 다시 한번 가구 수리소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예술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예술로 현시대에 도움이 되는 그런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다면, 예술에 대한 존재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특히 가구는 일상에서 공간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요. 저희의 가구를 통해 실제 삶 가까이에서 예술을 접하고, 환경도 함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