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훈 대표
길쭉한 나무 막대기들이 허공에 던져진다. 앞면일지 뒷면일지 긴장이 감도는 순간, 탄성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윷놀이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며 정다운 추억을 나누고는 했었지만, 이러한 풍경은 어느새 어색해졌다. 아이들은 온라인게임이 더욱 익숙하여 전통놀이의 종류와 규칙을 잘 알지 못한다.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이를 다시 사람들의 일상에 들여놓고 있는 이가 있다. 목재 본연의 아름다움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한 윷놀이를 만들고 있는 마따 디자인 스튜디오의 김다훈 대표다.
전통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하다
그와 나무의 첫 만남은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주인공이 원목 가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나무. 대리석이나 유리와는 달리 따뜻한 감촉을 주는 나무가 좋았다. 이후 전북대에서 주거환경과 가구조형디자인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나무를 다루기 시작했다.
마따 디자인 스튜디오는 가구조형디자인을 전공한 동료들과 함께 만든 창업동아리에서 출발한 원목 브랜드다. 처음에는 테이블과 의자, 도마 등 가구에서부터 각종 소품과 공예품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목재를 수급하는 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모든 과정을 직접 부딪치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윷놀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 MT에서 팀을 나눠 윷놀이를 했는데 목이 쉬도록 웃으면서 즐겼어요. 저희 세대는 사실 윷놀이를 자주 하지는 않잖아요. 그 매력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주변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보니 마땅한 게 없는 거예요. 대부분 나무가 거칠고 촉감이 좋지 않았어요. 패키지도 세련되지 않았었죠. '그럼 직접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했던 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침 가구를 만들고 버려지는 자투리 목재가 많아 고민이던 참이었다. 윷대를 만드는 것에는 큰 목재가 필요하지 않아 자투리를 활용하기 좋았다. 그렇게 현대적인 디자인에 선물용으로 보기 좋은 패키지를 추가한 새로운 윷놀이를 제작했다. 2022년에는 윷놀이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며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는 가구 제작을 멈추고 '우리노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통놀이 확산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젠가를 꿈꾸며
그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는 '우리윷'이다. 손이 작은 어린이나 여성도 쉽게 쥘 수 있도록 비교적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윷대가 특징이다. 윷대는 호두나무, 말은 벚나무와 호두나무로 만들어 단단하고 멋스럽다. 끝으로 갈수록 얇아지는 형태, 목재 본연의 색과 천연 오일의 촉감까지 단아한 미가 돋보인다.
최근 출시된 '경복윷'에는 경복궁 창살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밝은 색상의 너도밤나무 윷대 위로 그려진 교태전 '혼화살', 근정전 '솟을빗꽃살', 강녕전 '아자살', 집옥재 '사각문빗살'의 문양들은 한국적인 조형미를 드러낸다. 전통 윷놀이 외에도 경주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주사위 주령구를 본떠 만든 '안압지 주사위', 책상에 둘러앉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흔들어주세윷' 등 현대적 감각을 더한 전통놀이를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놀이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난 꿍꿍이도 벌이고 있다. 일명 '도깨비단 프로젝트'다. 길거리에 스티커를 붙여 거대한 윷판을 만들어 게릴라 윷놀이를 하거나, 카페 테이블을 장기판으로 디자인하여 장기를 두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는 장기판이 그려진 소반인 ‘대국소반’을 만들어 마을 정자에 두었더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네 사랑방이 되는 일이 있었다. 전통놀이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든 것이다.
젠가, 체스 이런 놀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잖아요. 한국 전통놀이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징어게임 다음 시즌에서 윷놀이가 등장한다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합니다.(웃음)
전통이라서,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소비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지는 않아요. 일반적인 보드게임처럼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찾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최근 김 대표의 목표는 윷놀이의 세계 진출이다. 이를 위해 놀이 방법을 영어로 번역한 설명서를 동봉한 윷놀이를 인천공항과 5대궁 안의 기념품샵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좌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책상에 앉아 간편하게 윷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화투패에 윷놀이를 더한 '윷투'와 같은 변형 윷놀이를 개발했다. 오래된 놀이들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