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지, 김심정 작가
팔복예술공장 옆 기찻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나무먼지 폴폴 날리는 창고 하나가 나타난다. 목공을 중심으로 가구와 집기 등을 만드는 이곳의 이름은 ‘소금공방’. 오래전 소금창고로 쓰이다 버려진 사연을 지닌 건물은 수상한(?) 작업자들에 의해 이름을 되찾았다. 예술가와 작업자, 그 경계에 있는 네 명의 청년이 터를 잡고, 또 다른 사람들이 찾아들며 예상치 못한 작업들이 벌어지는 곳. 소금공방을 이끌고 있는 김심정, 박수지 씨를 만났다.
모든 작업의 처음에는 나무가 있다
소금공방은 사실 나무만을 주목하는 공간이 아니다. 목공작업자인 김심정 씨가 운영을 맡고 있지만 분야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방의 일원이 되어 함께한다. 그와 함께 공방을 꾸린 아내 박수지 씨는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미술작가다. 여기에 현재는 조경 디자이너와 영상 작가가 함께 공방을 매개로 협업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창작활동을 벌이며 얻는 시너지는 크다. 이것이 소금공방이 향하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김 작가가 처음 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데에는 단청이 있다. 15년 넘게 단청 보수 일을 전문으로 해온 그는 알게 모르게 늘 나무를 만지며 살아왔다. 부부가 함께 정착을 고민하던 시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자연스레 나무를 떠올렸다. 본격적으로 목공을 배우며 목공인테리어 작업자의 길에 올랐다. 작가는 주로 지역의 카페와 서점, 주거공간을 디자인하며 공간에 맞는 가구를 만든다. 그렇게 1년에 쓰는 나무의 양만 10,000재가 넘는다고 하니, 언젠가 동네 카페에서 앉았던 의자가 작가의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김심정 정말 많은 양의 나무를 써요. 가끔 전시장에 갔던 목재품들은 저희에게 다시 돌아오기도 하거든요. 그럼 그 나무들은 다시 분해를 해서 재사용해요. 자투리목은 겨울에 땔감으로 쓰고, 톱밥은 저기 부안에서 젖소를 키우는 지인에게 나눔하고 있어요.(웃음) 참 알뜰하게 쓰이는 재료죠.
박수지 생각해보니 나무가 모든 작업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할 때도 목재를 이용해 전체적인 구조를 먼저 짜거든요. 그 구조물 위로 작가들의 작품이 올라가고, 이런 과정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풍부한 산림자원을 가졌지만 가구나 공예품에 사용되는 목재의 자급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수입목재에 의존하다보니 주로 쓰이는 나무의 종류도 한정적이다. 김 작가는 가구의 디자인을 고민하기 전에 나무의 현황을 먼저 파악한다. 좁은 범위 안에서 소재를 택하다보면 작업에도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시기에 구할 수 있는 목재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디자인과 비용을 고려해 적합한 나무를 찾는다. 저마다 색과 결, 성질이 모두 다른 매력을 갖기에 좋아하는 나무 한 가지를 택하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지금 손에 쥐고 만지는 나무가 가장 좋은 나무가 된다.
김심정 작업을 하다보면 철도 다루게 되거든요. 철을 다룰 때는 항상 긴장이 돼요. 가공할 때 나는 소리도 그렇고, 철이 만들어내는 면들이 굉장히 날카롭거든요. 그런 긴장감이 항상 올라오는데 나무는 저한텐 편안함을 줘요. 손에 닿는 감촉과 가공할 때의 냄새, 그런 것들이 다 편안하죠. 그래서 나무는 ‘좋다’는 표현보다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존재에요.
이방인에서 일원으로
든든한 동료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두 사람은 첫 만남 역시 나무로 연결된다. 아내 수지 씨가 서울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던 때, 우연한 기회로 작업실에 놀러온 남편은 열악한 공간을 보곤 마당에 나무데크를 깔아주겠다고 했다. 친해지기도 전에 벌어진 나무데크 사건(?)을 통해 이들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부부는 함께 작품 활동을 펼칠 공간을 찾아 나섰다. 전국을 여행하며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전주까지 오게 되어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다. 2주 만에 짐을 싸서 내려와 소금공방을 세웠다. 아무 연고도 없던 전주에 발을 딛고 산지도 5년이 흘렀다. 그사이 예쁜 딸도 태어나 딸에게는 전주가 고향이 되었다. 부부는 이렇게 이방인에서 지역의 일원이 되어가는 중이다.
박수지 자연과 계절이 느껴지는 곳에 저희가 있다는 게 좋아요. 지금은 외부인과 원주민, 두 가지 시점을 같이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예술인들이 어딘가 정착하는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많거든요. 문화예술을 통해 이곳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또 찾아보고 있어요.
소금공방은 앞으로도 새로운 작업자들과 교류하며 공간의 역할을 넓혀가려한다. 여러 갈래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잘 묶어내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과제로 안고 있다. 공방에서 함께하는 이들은 화가나 작가, 디자이너 등 특정한 수식어보다는 모두 작업자라 불린다. 분야를 떠나, 모두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며 사는 ‘작업자’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니 재미난 프로젝트를 꿈꾸는 작업자라면 누구든 소금공방에서 실험을 함께해도 좋다고 전한다. 앞으로는 어떤 작업자들이 소금공방의 이야기를 더할지 궁금해진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