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다시 태어나다  2025.4월호

그림을 버텨내는 단단함만 있다면

화가 유대수


유대수 작가



캔버스와 물감 대신 나무와 조각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화가 유대수는 목판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목판화는 판화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는 우리 삶과 늘 함께하기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무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목판화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목판의 역할은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잘나고 좋은 나무가 아니어도 괜찮다. 작가는 어떤 나무든 판화에서는 그저 그림을 버틸 수 있는 단단함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작가 유대수는 단단한 목판 위로 어떤 이야기를 새기고 있을까.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다 

작가의 작업실에는 이곳저곳 각기 다른 모양의 나무 조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친 껍질이 그대로 남아있는 은행나무부터 대형 합판, 손바닥만 한 작은 목판까지. 그에게는 이 모든 나무가 도화지나 마찬가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나무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피나무 등이다. 작품을 여러 장 찍어내려면 목질이 단단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각을 섬세히 하기 위해 부드러움도 갖춰야 한다. 단단하면서 부드러워야 한다니, 좋은 목판이 되기 위한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그러나 조금 부족한 나무더라도 굳이 종류를 따지지 않는다. 판화의 세계에서는 나무의 속성보다 무엇을 어떻게 조각해내는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판은 나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요. 작품을 위한 지지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나무가 소나무냐 은행나무냐에 따라서 그림이 달라지지는 않죠. 공사장 합판에 찍어내면 후진 작품이고, 금강송에 찍어낸 작품은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작품의 묘사 정도나 필요한 크기 정도만 고려해서 여러 나무를 써요.







한번은 격파 시범을 보다가 송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송판에 작업을 하기도 했다. 가격이 저렴한 덕에 현재도 자주 사용하는 재료 중 하나다. 그의 작업은 목판뿐 아니라 모든 과정이 나무와 닿아있다. 그림을 새기는 한지도 나무에서 왔으며, 한지를 문지르는 데 사용되는 도구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온종일 나무를 만지는 사람임을 깨달으니, 그는 “내가 천생 나무와의 인연을 타고났나 보다” 말한다. 


목판에 새기는 나의 메시지 

저마다 다른 출신지를 자랑하는 나무들은 목판으로 쓰이는 순간 귀한 가치를 얻게 된다. 작가는 그 위로 어떤 그림들을 새길까. 그의 그림은 결코 가볍고 경쾌하지만은 않다. 나에 대한 성찰, 인간 내면의 쓸쓸함, 사회적 메시지 등 그는 작품을 통해 매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가 이렇게나 험난한데 내가 뭘 할 수는 없어 답답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니 내가 죽겠고. 결국은 작품을 통해 위로하고 다짐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예전에는 주먹이나 칼, 투쟁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그렸는데 이제는 그런 장면보다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를 표현하고 싶어요.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현실은 쉽지 않지만 지금도 그 바람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숲 - 바람소리 (2020)




1년 전, 전주천 버드나무가 무참히 잘려 나갔던 때 작가는 통탄스러운 심정으로 목판 위에 버드나무를 새겼다. 판화는 과거 민중미술 운동에서 급부상한 장르다. 시대가 변했어도 사회는 여전히 어지럽고, 작가의 판화는 지금도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 작가는 1989년 대학에 들어가 목판화를 처음 배웠다. 판화가 곧 그의 정체성이었지만 한동안 그는 문화기획 분야에서 활동하며 화가보다는 기획자로 통하는 일이 많았다.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자 결심한 후, 7년 전부터는 판화에 매진하고 있다. 작업에 소홀했던 지난 세월을 뛰어넘기 위해 그는 더욱더 열심히 세상을 들여다보고 나무를 만지고 있다.


오감을 건드리는 나무의 매력 

나무를 다루는 일은 재미만큼 고통도 따른다.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고 매번 나무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무가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자연의 재료이다 보니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요. 사각사각 조각하는 소리와 나무의 속살을 깎아냈을 때 나는 특유의 나무 냄새까지. 온몸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오감을 건드리는 매력이 있죠.


평면의 종이 위에 찍힌 이미지 뒤에는 수많은 손길로 다듬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사실. 그걸 알고 나면 비로소 판화의 매력이 보인다. 아름다운 나무의 질감과 입체감이 돋보이는 목판은 미완성이 아닌 그 자체로 작품이 아닐까.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