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다시 태어나다  2025.4월호

선율을 깎고 울림을 엮다

악기장 고수환


고수환 악기장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하나의 악기로 탄생하기까지. 60년의 세월, 수만 번의 손길로 나무를 매만지며 가야금을 만들어온 장인. 2023년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현악기 보유자가 된 고수환 장인이다. 나무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자라듯 악기장 또한 긴 세월을 지나며 나무에 선율과 울림을 더한다. 그 고단하고 수고스러운 수백 가지 과정을 거치면 나무는 변하지 않는 생명력과 선율을 품고 다시 태어난다. 


가야금 선율에 빠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와 친했다. 동네 뒷산이 그의 놀이터였다. 아그배나무의 튀어나온 뿌리를 캐다가 사슴과 강아지 모형을 만들고, 때로는 나무로 팽이를 조각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초등학생 때 연기가 나오는 거북선을 만들 정도였으니 나무를 잘 다듬어야 하는 악기장의 소질을 타고났던 셈이다.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바로 일을 해야 하는 환경. 누나가 가야금 만드는 곳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매형의 동생이 하는 공방이었다.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가야금에는 줄을 받치는 안족이라는 게 있는데, 가니까 그걸 보여주더라고요. 나무를 손으로 깎아서 만든다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놀듯이 배우기 시작했지요. 나중에 보니까 통나무에 줄을 걸어서 소리를 내는데 야, 소리도 예쁘네? 그러면서 그 조그만 게 가야금 만드는 거에 몰입된 거예요.


기술을 배우던 초반에는 연주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악기의 수요가 적었다. 이내 선조들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정부 정책으로 국립국악원과 국악고등학교 등이 생겨났다. 주문이 물밀듯 밀려들었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가야금 만들기에 전념해야 했다. 유난히 솜씨가 좋았던 그는 3개의 공장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어 가야금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다. 20대가 되었을 때 그는 국내 최고 기술자로 꼽혔지만 고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주에 내려왔다. 악기사 이름을 '전주국악기'라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공방 옥상에서 풍화 중인 나무판




오동나무는 하늘, 밤나무는 땅

악기장은 끊임없이 나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둥둥 두드리며 울림을 느끼고, 그 울림에 따라 나무의 두께를 조절한다. 나무의 소리를 알지 못하고 만든 가야금은 악기가 아닌 그저 모형에 가깝다.


가야금은 앞판과 뒤판을 따로 제작한 후 합치는 형태로 몸이 만들어지는데, 앞판은 오동나무로 만든다. 음의 전달이 잘 되고 쉽게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뒤판은 밤나무로 만들어야 오동나무의 음을 받쳐 주면서 적절하게 진동한다. 악기장의 말에 의하면 오동나무는 하늘이고, 밤나무는 땅과 같다.


산에서 자생한 나무를 써야 해요. 밭에다가 심은 것들은 물러서 안 돼요. 산에서 자란 나무는 거름도 안 하지, 병 관리도 안 하지, 찌들고 찌들면서 컸기 때문에 강하죠.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 나무도 안 돼요.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강도가 무르지요. 비유를 하자면, 부모님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춰주며 오냐오냐 키운 애는 어떻게 되겠어요. 혼자 살아가는 힘이 없겠지요.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나무 중 으뜸은 '석상오동'이다. 돌 틈에서 자란 오동나무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악기장에게 석상오동을 찾는 것은 금은보화를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나이테가 촘촘하고 강도가 강해 맑고 좋은 소리를 낸다. 


아름드리나무를 자르면 다시 여섯 해를 기다려야 한다. 그의 공방 옥상에는 나무들이 비스듬한 자세로 서서 가야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3년 동안 눈, 비, 바람을 맞으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 나무 속의 진이 다 빠져나가 가벼워진다. 남은 3년은 숙성 기간이다. 그늘에 두고 잘 말린 후 겉의 썩은 부분을 갉아내고 나면 그제야 공방 안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갖게 된다.








대를 이어가는 가야금

그가 만든 가야금은 족히 50년을 쓸 수 있다. 줄과 안족만 제때 바꿔준다면, 대를 이어 물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가야금이 이런 것은 아니다. 그는 시중에 1년도 가지 않아 음이 바뀌는 가야금이 많아 안타깝다고 전한다. 악기를 만드는 일을 장사라고만 생각한다면 50년이 가는 악기는 좋지 않다. 재구매가 이어지지 않으니 이익이 크지 않지만, 전통 악기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제작의 원칙을 철처하게 지킨다. 


악기를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연주자가 마음 놓고 연주할 수 있도록 소리가 변하지 않아야 하지요. 그러니까 만들었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보내고 나서가 더 문제예요. 말하자면 자식 결혼시키고도 잘 살고 있는가 걱정이 되잖아요. 잘 살라는가, 못 살라는가 계속 들여다보게 되듯이 악기도 제대로 연주되고 있는지 봐야 해요.


연주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오랜 시간 연주를 배웠다. 직접 가야금을 탈 수 있게 되니 오히려 판매는 쉽지 않아졌다. 최고의 악기라고 내밀었던 것들도 다시 한번 돌아보며 매만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악기에 대한 진심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그는 1998년 전라북도 지정 무형유산 보유자가 됐다. 그리고 2023년, 그동안의 결실을 다시금 인정받아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현악기 보유자가 되었다. 60년을 가야금과 함께 했지만 그는 이 작업이 단 한번도 질리거나 싫었던 적이 없다. 천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