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연극이 곧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 연극인 김영오가 이끄는 한옥마을 아트홀은 올해로 개관 17년을 맞았다. 이름과 달리 이곳은 한옥마을이 아닌 전주 효자동에 자리하고 있다. 2008년 7월 한옥마을에 문을 연 이후, 2021년 신시가지로 이사를 했지만 오랜 세월 불린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담한 무대와 알록달록한 나무 의자가 마주보고 있는 극장은 50석 규모의 아주 작은 크기이다. 하지만 매일 일상처럼 공연을 올리며 많은 관객들이 공간을 채운다. 어떤 해에는 달마다 12개의 다른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하루에 네 번의 공연을 소화한 적도 있다. 그만큼 이곳은 연극에 ‘진심’이다. 젊은 시절 지역 극단에서 활동하던 김영오 대표는 연극계의 부조리한 현실을 느끼며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었다. 2002년 무렵 극단 ‘재인촌 우듬지’를 결성한 그는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의 한옥마을 아트홀을 만들었다. 연극계 선후배로 만난 남편 정찬호 씨가 연기와 연출 등을 함께하며 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단원들도 함께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
한옥마을 아트홀은 그동안 ‘안녕, 엄마!’, ‘화, 그것은 火 또는 花’, ‘순정이 블루스’, ‘THE CAT’, ‘그해 봄날, 꽃닙비’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공연을 통해 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지역에 전해왔다. 현재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성장 연극 ‘오늘부터 맑음’을 5월 17일까지 공연 중이다.
“쉼표는 찍어도 멈추진 않을 거예요”
김영오 대표
─한옥마을을 떠나 자리를 옮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똑같은 공간에서 연극을 10년 넘게 하니까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느꼈어요. 새로운 창작 욕구가 생기질 않았던 거죠. 그래서 자리를 옮기기 전 2년 정도는 극장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공연이 있을 때만 잠깐 가는 정도였죠. 아무런 창작 의지가 생기지 않다보니 새로운 것을 찾아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창작자로서 저는 익숙한 게 싫거든요. 늘 같은 모양의 공연장은 지겨워요. 사실 위치보다는 공연장의 모양, 형태에 변화를 주는 게 중요하죠.
─긴 시간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던 힘은 무엇인가요
초기에는 돈이 감당이 안 되니 아르바이트를 3개씩 하며 버텼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내가 쓰기 시작했죠. 작가가 있으면 극단은 죽지 않거든요. 살아남기 위해 직접 희곡을 쓰다 보니 내가 무언가 쓸 줄 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어요. 만약 살림이 여유로웠다면 제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텐데 작가가 된 것도 제 운명인 거겠죠. 늘 넉넉하진 않았지만 저희는 이 공간을 유지하는데 모든 걸 걸고 있어요. 지원사업을 받아도 배우 출연료로 거의 다 쓰이거든요. 무대 위 소품, 그림도 다 직접 그리며 1인 5역씩을 하고 있죠.
─앞으로는 공간에 어떤 변화를 꿈꾸시나요
이제 곧 공연장의 자리를 다시 옮기려고 계획하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전주 근교에 지금보다 큰 공연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관객들이 달달한 케이크와 음료를 먹으면서 자유롭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멋지지 않을까요? 한쪽에는 천막극장을 지어서 고정된 공연장의 형태를 벗어나고도 싶어요. 연출가의 생각대로 객석과 무대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공간에서 실험적인 연극인들이 모이는 페스티벌도 열어보고 싶어요.
─나에게 소극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한테 소극장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에요. 다른 극장들은 연극을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이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공간은 오롯이 저라는 사람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거든요. 물론 그 대상은 시민들이고요. 제 희곡이 무대 위에 일어서서 구체화되고, 관객들이 거기에 반응할 때 참을 수 없을 만큼 짜릿하고 즐거워요.
요즘은 AI가 음악도 만들고 희곡도 써주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그게 안돼요. 진짜 배우가 무대에 올라야만 가능하죠. 눈앞에 실제 이야기가 보이기 때문에 연극이 좋아요. 연극은 꼭 살아남을 테니 한옥마을 아트홀은 쉼표는 찍더라도 멈추진 않을 거예요. 이 소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계속 해나가야겠죠.
한옥마을 아트홀ㅣ전주시 완산구 홍산북로 23-9 그레이스빌딩 3층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