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소음이 가득한 전주 시내 한복판. 적막한 사무실이 층층이 들어선 빌딩의 10층에 올라서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2018년 개관한 클래식 전문 공연장 '문화공간 이룸'이다. 이곳은 피아니스트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이윤정 대표가 무대를 오르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꾸민 공간이다. 비좁았던 대기실과 연습실, 불편했던 동선과 음향 등 아쉬웠던 기억을 되짚으며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이룸'이라는 이름에는 '꿈을 이룬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공연장을 꿈꾼다. 이 대표 역시 오랜 시간 상상해 온 그 꿈을 '이룸'을 통해 현실로 만들었기에,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번듯한 무대에서의 독주회를 꿈꾸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 진정 '꿈을 이루는 공간'이 되고 있다. '패밀리 락 콘서트', '부캐의 시대' 등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전문 예술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자신의 취미와 열정을 무대 위에서 펼칠 수 있었다.
최근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2025 아르코 공연예술창작주체 창작공간 사업에 선정된 것. 함께 선정된 세 곳 중 유일한 지방 공연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성과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로운 클래식 선율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이룸은 그렇게 도시 한복판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사부작사부작 걸어오는 공연장”
이윤정 대표
─올해는 어떤 공연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비르투오조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제대로 된 클래식 공연들을 준비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고상지밴드, 소프라노 서선영, 더뉴바로크컴퍼니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전주를 찾을 예정입니다. 특히 서선영 소프라노는 이번에 한국 가곡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해 전주의 사계를 노래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되는 공연이에요.
또 이룸에서는 다른 장르와 융합하는 공연을 계속 시도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시'와 함께합니다. 문학을 읽고, 음악을 감상하는 '담담(澹談)- 시, 음악 속을 걷다'인데요. 9월에 정호승 시인이 직접 전주를 찾습니다. 많은 분이 보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작년 기획했던 '명화따라 클래식 산책' 시리즈가 관객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미술가 한 명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는 공연이었는데, 지역에 있는 고보연 작가부터 프리다 칼로 같은 거장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고 음악으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천경자 편이 기억에 남아요. 작가님의 둘째 따님이 직접 오셔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마침 작년이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이었는데, 이렇게 기념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셨어요.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도 저희 공연이 인상 깊었다고 말씀해 주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고 뭉클했죠.
─대표님이 꿈꾸는 이룸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부작사부작 걸어올 수 있는 가까운 공연장이요. 언젠가 공연이 끝난 뒤 나이 지긋한 부부 두 분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사부작사부작 걸어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멋진 공연장이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 이야기에 큰 힘을 얻었죠. 대부분의 공연장이 시내 외곽 쪽에 있는데, 저희는 효자동 한 가운데에 있잖아요. 클래식을 잘 모르는 분들도 마실 가듯 편하게 올 수 있는 공연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에 문화가 스며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문화공간 이룸ㅣ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 36, 10층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