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또, 새로 문 연 동네책방  2025.7월호

책 틈 사이, 다정함이 흐르는 공간

풀의 유영




헐렁한 서가에 채워질 이야기   

전주에 가장 최근 문을 연 따끈따끈한 신생 책방 풀의 유영.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30초짜리 쇼츠 영상에 익숙해진 시대에도 책방지기 이풀잎 씨는 책을 펼치는 순간만은 일상이 느리게 흐른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그런 느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과하고 나면 조금은 느린 호흡을 지닐 수 있길 바라며 책방을 열었다. ‘풀의 유영’이라는 이름에도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 안에서 천천히 유영하듯 머물다 가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풀의 유영의 서가는 아직 빈자리가 많다. 소외받는 장르가 없도록 특별한 기준은 두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들이 헐렁하게 꽂혀있는 책장. 눈에 띄는 점은 책방지기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만화책들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자세히 읽지 않아도 믿고 들여오는 작가의 책, 자신이 고민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내용의 신간, 출판사의 서평을 꼼꼼히 읽고 마음이 동하는 책들을 들여온다. 아직 책장을 채워가는 단계지만 책방지기는 하고 싶은 게 많다. 6월의 마지막 날 풀의 유영의 첫 행사를 열기도 했다. ‘6월까지 뭐했니?’라는 제목으로 올해의 절반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 하는 모임이다. 이 작은 모임을 시작으로,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모일 수 있는 자리를 하나둘 늘려가려 한다.


“나는 좋아하는데 남들 앞에서는 왠지 꺼내기 부끄러운 책 한 권씩이 다들 있잖아요. 그런 책들을 들고 모이는 자리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어요. 모든 장르가 다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것. 그런 모임이 열린다면 너무 재밌지 않을까요?”





기다림 끝에 만난 운명의 공간  

이풀잎 대표는 오랜 시간 병원에서 일하며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늘 책방을 찾고 필사 모임에 나가며 책 가까이에 있었다. 그사이 마음 한구석에는 ‘책방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자랐다. 그 꿈이 점차 크기를 키우며 뚜렷해질 쯤, 직장을 그만두고 곳곳의 책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일본의 개성 있는 로컬 서점들로 답사를 다니며 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한 주에 단 한 권의 책만 소개하는 도쿄의 작은 서점 모리오카 등 자유롭고 실험적인 공간들을 만나며 많은 걸 배웠다. 동시에 ‘빨리 내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열망은 가득 부풀었다. 그러나 공간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간을 찾아다닌 끝에 동문길 초입에 자리한 지금의 공간을 운명처럼 만났다. 


풀의 유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칸에 『효자시절』이라는 책이 있다. 책방을 준비하던 시기 이 대표와 지역의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 재건축으로 사라질 예정인 전주 효자주공3단지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어린시절 실제 그곳에 살았던 추억을 안고 있기도 하다. 기록하면 적어도 그냥 사라지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최근에는 두 번째 책 『아파트와 나』를 출간했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 아파트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모은 책이다. 그는 앞으로도 도시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책장 한편을 자신의 책으로 채워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좋은 책을 만드는 일도, 책을 많이 파는 일도 아니다. 모두가 이 공간을 통해 조금 더 다정해지는 일이다. 





이풀잎 책방지기

취미는 구름 관찰하기.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찰나의 풍경들을 글이나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탓에 한 권을 오래도록 손에 들고 병렬독서를 실천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정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책방을 지킨다.



풀의 유영

#신생책방   #느림의미학   #기록 

2025년 5월 오픈  

전주시 동문길 117 1층

12:00-19:00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