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은 근대역사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다. 그 배경에는 항구도시로서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군산은 과거 교통의 요지로 통하며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모이는 곳이었다. 1899년, 부산과 인천, 목포 등에 이어 군산은 도시의 성장을 꿈꾸며 개항을 맞았다. 그러나 군산항은 곧 일제의 수탈 통로가 되었다. 호남평야의 풍부한 쌀을 약탈하기 위해 많은 일본인들은 군산에 모여들었다. 그때 지어진 일본식 집과 세관, 은행 등의 건물이 여전히 군산에 남아있다.
군산시는 2000년대 후반부터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을 본격화하며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장미동과 월명동, 영화동 일대를 근대문화거리로 조성했다. 일제의 수탈을 상징하는 건물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당시의 건물들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복원되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도시의 상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시민의 기증 자료를 포함해 3만 4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전국의 국공립박물관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해양물류역사관부터 독립영웅관, 근대생활관 등 주제별로 군산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으며 과거 세곡을 운반하던 배 모형을 비롯해 군산항의 변천사를 정리한 자료,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1930년대 군산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군산근대미술관
박물관을 나서면 오른쪽에는 옛 군산세관이, 왼쪽에는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이어진다. 1908년에 지어진 구 군산세관 본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관 건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책정하고 거두는 업무가 이루어진 곳으로,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수탈사를 목격한 곳으로써 역사적 의미가 깊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외관과 고딕양식의 지붕, 로마네스크 양식의 창문, 현관의 처마는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건축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현재 군산근대건축관으로 문을 열고 있다. 1923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조선은행은 당시 군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꼽혔다. 과시하듯 높게 올린 지붕, 웅장한 크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로비 바닥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을 통해 군산의 근대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금고실과 지점장실, 응접실을 전시공간으로 꾸며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의 역할과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다양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근대건축관과 가까운 거리에는 군산근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근대미술관 역시 1907년 설립된 일본 제18은행으로 쓰이던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보수를 통해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동국사 Ⓒ김경기
골목 사이사이에도 일제강점기 역사를 간직한 공간들이 숨어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절 동국사는 일본인 승려가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광복 이후 ‘동국사’로 바뀌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일본 불교는 한국 불교를 흡수하기 위해 강압적인 통치를 벌였다. 동국사에는 이러한 일본의 만행을 참회하는 내용이 담긴 ‘참사문비’가 세워져있다. 참사문비 바로 앞쪽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서있어 마음이 더욱 숙연해진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부유한 일본인들이 살던 주택인 ‘신흥동 일본식가옥’과 ‘이영춘 가옥’, 쌀을 수탈하던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부잔교’,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터널 ‘해망굴’ 등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통해 군산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고 기억되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