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역사를 만나다  2025.8월호

강 따라 흐르는 수탈의 역사

익산 근대역사문화공간


만경강 범선 엽서



익산은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자리하여 일찍부터 농업과 교통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풍요로움은 일제의 수탈로 돌아왔다. 일제는 군산항을 개항하고 이후 군산과 이리(익산), 전주를 잇는 호남선을 개통했다. 일본인 지주들의 대규모 농장이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익산에는 무려 13곳의 일본인 농장이 있었다. 1925년 통계로 익산 인구의 40퍼센트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익산 인화동은 그런 역사가 축적된 장소다. 과거에는 ‘솜리’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솝’은 ‘속’, 즉 ‘안쪽’을 뜻한다. 이리의 ‘이’도 바로 그 ‘속 이(裡)’ 자에서 비롯됐다. 1914년 동이리역이 생기며 현재 남부시장 일대는 지역 상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919년에는 이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해방 이후에는 주단거리, 바느질거리, 양키골목이 생겨나며 생활사와 산업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인화동은 현재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이 11곳에 이른다.


솜리장터에 울려퍼진 만세 

인화동 남부시장 앞에는 익산항일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옛 대교농장 사무실을 활용하여 만든 공간으로, 항일운동관, 일제강점기 수탈관, 4.4만세운동관 등 3개 관이다. 의병장 오하 이규홍, 문용기 열사,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임규 등 익산의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익산의 만세운동은 4월 4일 이리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났는데, 그 장소가 대교농장 사무실 맞은편 솜리장터였다. 개신교 교회들을 주축으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으며 1,000여명의 군중이 참여했다. 일본 헌병대는 무력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문용기 열사 등 6인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9명이 체포되었다. 현재 남부시장 앞 광장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세운 문용기 열사의 동상이 있다. 


대교농장은 일제강점기 오하시은행을 소유했던 오하시 요이치가 건너와 1907년 설립한 농장이다. 1913년 기준 30만평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던 대농장이다. 광복 이후 화교소학교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익산시가 매입하여 현재의 기념관이 되었다. 지난 2021년 이른바 '금괴 매장설'이 재기되며 지역 사회의 주목을 끌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오하시 일가가 일제 패망 이후 막대하게 쌓은 재산을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어 각종 보물을 농장에 묻어두고 갔다는 소문으로, 단순 풍문으로 밝혀졌다.



익산근대역사관,  문용기 열사 동상



지역을 위해 헌신했던 한 의사

일제강점기 지역을 위해 헌신했던 한 의사가 있다. 삼산 김병수다.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군산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고, 서울 남대문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뒤 학교를 졸업하고 군산 야소교병원을 거쳐 이듬해 익산에 삼산의원을 설립했다. 이곳은 현재 지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조성한 '익산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은 근대 이리의 출발과 농업사, 항일운동사, 해방 이후의 이리 등 익산사가 압축되어 있다. 2층은 3D프린터로 만든 근대익산의 거리와 김병수 선생의 일대기를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본래 중앙동 우체국 옆에 위치했으나 2018년 건물을 통째로 절단, 해체한 뒤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외관에는 벽면에 빗물이 흐르지 않도록 수평으로 돌출된 띠를 둘렀고, 중앙부에도 다양한 장식 요소가 더해져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느낌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무진회사, 한국흥업은행, 국민은행 등으로 활용되었다. 


100년 된 은행의 봉인된 금고 

인화동 골목을 걷다보면 근현대양식의 독특한 민트색 건물이 나온다. 이곳에는 100년 가까이 봉인된 채 열리지 않은 금고가 있다. 옛 익산금융조합 건물 안에 있는 이 금고는 두꺼운 철문과 부서진 다이얼만 남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해지기로는 일제 패망 당시 일본인들이 일부러 잠금장치를 파손하고 떠났다고 한다. 수많은 추측을 낳았던 이 금고는 이제 ‘솜리문화금고’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복합문화공간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익산금융조합은 일제강점기 당시 협동조합과 금융기관의 역할을 수행했던 곳으로, 당시 금융기관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해방 이후에는 등기소와 전북은행으로 사용되다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2024년 6월 솜리문화금고로 리모델링되었다. 아이들이 금융 지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익산의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들을 RFID 미디어와 홀로렌즈를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지역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익산시민역사기록관, 인화동 등록문화유산에 입주한 매듭공방



보통의 익산 이야기가 모이는 곳 

익산 평화동의 아파트 단지, 이 사이에 옛 익옥수리조합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한 익산시민기록역사관이 있다. 2021년부터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통해 시민들로부터 약 9,000여 점의 기록물을 기증받았으며, 일기, 졸업앨범, 상장 등 시민들의 생활사와 교육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다. 기록물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디지털로도 열람할 수 있다. 


익옥수리조합은 일제강점기 당시 익산 지역의 쌀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반복되는 가뭄으로 쌀 반출량이 줄자 일본인 지주들은 수리조합을 설립하고 대규모 댐 건설을 추진했다. 이 댐이 바로 완주군 고산면에 위치한 ‘대아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댐이자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였다. 수리조합 건물은 1930년 현 자리에 완공되었다. 하단부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외벽은 수직과 수평 방향으로 벽돌을 조합해 쌓는 네덜란드식 축조법이 적용되었다. 지붕은 쌍대공과 꺾임 트러스 구조를 사용한 맨사드형 지붕으로 시공되어 일반적인 ‘ㅅ’자 박공지붕보다 넓은 다락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독특한 건축적 특징 덕분에 영화 <동주>(2016)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 


인화동 일대는 최근 다시 한 번 변화를 맞고 있다. 등록문화유산들에 숙박업소, 비누공방, 카페, 마크라메 공방 등이 입주했다. 최근에는 ‘솜리문화의숲’도 문을 열었다. 소규모 공연장, 전시장,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익산시 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춘포역사



시간이 멈춘 기차역

근현대 익산에서 인화동 다음으로 주목할 곳은 춘포면이다. 춘포는 일제의 미곡 창고라 불릴 만큼 쌀 수탈의 거점이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춘포역이다. 1914년 철도 개통과 함께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 중 하나로, 이리(익산)와 전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2007년 폐역된 뒤에는 철도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춘포역의 옛 이름은 ‘대장역’으로, 이는 춘포면 내 일본인 거주 마을을 ‘넓은 마당’이라는 뜻의 ‘대장촌’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춘포에는 일본 귀족 출신 호소카와 모리다치가 세운 호소카와 농장이 있었다. 그는 훗날 일본 총리가 되는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조부다. 한일합병 전부터 농토를 매입해 약 40년간 춘포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춘포역 인근에 1940년경 농장 관리인이 지은 2층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어 전통적인 일본식 주택 구조를 엿볼 수 있다. 


호소카와 농장이 소유했던 도정공장은 '춘포도정공장'이라는 이름의 미술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방 후에도 도정공장으로 쓰이다가 90년대 말부터 방치되었고, 재개발로 없어질 처지였던 것을 익산 시민 서문근 씨가 사들였다. 한국 근현대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해온 조덕현 작가의 개인전 등 의미있는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또 다른 농장인 이마무라 농장의 부지 일부에는 청년들이 들어와 '카페 춘포'를 만들었다. 당시부터 있었던 탱자나무 울타리와 돌담, 돌기둥, 우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단순한 카페가 아닌 춘포면의 역사를 조명하는 도보투어, 포럼,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오며 마을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1919년 4월 4일 솜리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교회 중 하나인 ‘대장교회’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너른 들판과 수런거리는 강변 갈대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시골 풍경 속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