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역사를 만나다  2025.8월호

소설과 현실을 잇는 특별한 마을

김제 아리랑문학마을


재현된 죽산주재소 Ⓒ김경기



"아부지넌 이 시상 사람이 다 공평허단 

것얼 믿었고, 그런 시상얼 맹글라고 

싸우다가 죽은 것이여. 긍게 사람얼 

돈으로 흥정허고 허는 것얼 아부지넌 

질로 못된 짓으로 생각혔제. 

가난이야 죄가 아닌게 니도 아부지 

그런 생각얼 맘에 짚이 담고 살아야 혀." 

감골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딸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조정래 『아리랑 3』 중



우리 민족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부르던 노래인 ‘아리랑’.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이 노래는 민족의 고통과 희망을 대변했다. 조정래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 『아리랑』 역시 그 의미를 함께한다. 일제강점기의 김제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일본의 수탈 역사를 고발하는 역사소설이다. 2012년, 『아리랑』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김제 죽산면에 개관한 아리랑문학마을은 이러한 소설의 무대를 옮겨놓은 공간이다. 소설 속 인물과 장소 등을 재현한 18동의 시설이 모여 있어 둘러보는 것만으로 역사 공부가 된다.



아리랑문학마을 일제수탈관 Ⓒ김경기


하얼빈역



우리나라의 대표 곡창지대인 김제·만경평야는 과거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 불렸다. '징게'는 김제, '맹갱'은 만경, '외에밋들'은 너른 들을 뜻한다. 일제는 1900년대 초부터 이 풍요로운 땅을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인 일제수탈관에서는 김제가 왜 수탈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이러한 역사적 자료와 수탈 과정 등을 세세하게 전시하고 있다. 옆으로는 당시 민중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 사람들을 잔혹하게 착취하고 탄압하던 주재소를 비롯해 토지 수탈의 만행에 앞장선 면사무소, 일제의 정보 수집 통로가 되던 우체국, 오직 일본인을 위한 쌀을 도정하던 정미소 등을 복원한 공간들이 이어진다. 


특히 1910년경 실제건물의 60% 크기로 축소 복원한 하얼빈역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두어 외부 공간을 꼭 둘러보는 것이 좋다. 내부에는 조정래 작가의 취재 노트와 소설 속 이야기, 투쟁의 역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내촌마을과 외리마을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빌려 일제강점기 수탈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마을은 실제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등장인물인 송수익의 집과 감골댁, 차득보 가옥 등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면 근처에 위치한 조정래아리랑문학관을 함께 들러도 좋다. 


근대 역사를 다룬 지역의 공간 중에서도 김제의 역사 공간은 소설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12권으로 이어지는 대하소설 『아리랑』을 펼쳐 읽는 일이 어렵다면, 아리랑문학마을에 들러 소설 대신 공간을 먼저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