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역사를 만나다  2025.8월호

평화로운 농촌 그 이면의 이야기

정읍근대역사관


농장관리인들의 모임인 구마모토 농장 사음회(舍音會)




김제와 부안, 정읍 등 주변 지역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신태인읍 화호리. ‘벼를 심은 논이 호수처럼 펼쳐져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름진 호남평야의 중심부가 되던 이곳 역시 일제가 선호하는 쌀 수탈지 중 하나였다. 화호리는 당시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면서 전통적인 농촌마을과 일본인 농장 관련 건물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그 역사를 보여주는 정읍근대역사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쌀을 보관하는 창고로 세워진 이 건물은 화호중앙병원과 화호여자고등학교로 잠시 사용되다가 지난 2021년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건물 자체가 수탈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정읍근대역사관은 전시실과 아카이브센터로 구성되어있다. 일제강점기 주민 생활사를 담은 사진과 영상, 쌀 수탈 기록물 등의 시청각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화호리의 아픈 역사는 역사관 밖을 나설 때 비로소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 근대역사관 주변에는 구 일본인 농장가옥을 비롯해, 농림과장 사택, 조선인 노동자 거주지, 일본인 직원 사택, 학교, 진료소, 병원, 소화여관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이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정읍을 중심으로 전북 일대 5개 군에서 대규모 토지를 차지하고 있던 구마모토 리헤이가 소유했던 것들이다. 특히 구 일본인 농장가옥은 일본인 농장주의 생활양식과 이들의 농촌수탈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주택의 왼쪽 앞면에 사무용 건물이 나와 있고 오른쪽 뒤로 일본인이 거주하던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두 건물을 복도로 연결해 근대기 일본식 주택의 배치 방식과 특징이 나타나있다. 


구마모토는 당시 우리 농민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시작, 불법적인 토지 침탈을 일삼으며 농토를 모조리 빼앗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자작농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일본인 지주들은 화호리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구마모토가 머물던 농장가옥은 마을의 가장 높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있다. 그 자리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평화로운 풍경이 어쩐지 아프게 다가온다.



역사관 뒤편 일본식 주택 (사진 전북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