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승환 작가
작년 일제강점기군산역사관에서 한 전시가 열렸다. 제목은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이야기한 양주동 시인의 시 「무덤」(1925)의 시구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맞아 기획된 이 추모사진전은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천승환 씨가 기획했다. 직접 관동 지역의 조선인 위령비와 관련 사적지 60여 곳을 찾아 촬영한 사진이 바탕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93년생 젊은 사진작가, 천승환 씨를 만났다.
역사를 따라 떠난 여행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에 진학해 다양한 역사 관련 활동에 참여해 왔다.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참여한 '독도사랑 청년 캠프'였다. 오랫동안 취미에만 머물렀던 사진은 캠프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해 캠프의 주제는 독도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 덕분에 많은 사진 전공자들과 어울리며 진지하게 사진을 대하게 되었고 이후 사진작가의 길을 결심했다.
2017년, 군 전역 후 그는 세계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동선은 역사책 속 장소들을 따라 정했다. 도착한 유적지들은 관리가 부실하여 방치된 경우가 많았다. 여행은 곧 기록의 여정으로 바뀌었고, 아시아와 유럽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비롯한 역사적 장소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기록한 사진과 정보들은 한국에 돌아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온라인 지도로 만들어 배포했다.
상흔을 딛고 잡은 두 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관심은 영화 <박열>(2017)에서 시작됐다. 15분 남짓한 재현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직접 두 곳의 조선인 위령비를 찾았다. 조사 과정에서 한국 내에서도 이 사건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던 해. 이 시기에 맞추어 전시를 여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촬영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일본인 할머니가 다가와 비석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위령비에 대해 설명하자 조용히 응원의 이야기를 건네왔다. 시간이 조금 흘러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다시 와 꽃을 두고 참배했다.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가족 모두가 천 작가의 손을 잡아주었다.
카나가와현 오카와 쓰네키치 서장 감사비. 관동대지진 당시 자경단으로부터
조선인과 중국인 약 300여명을 보호했던 카나가와 요코하마 쓰루미구의 경찰서장이다. Ⓒ천승환

치바현 관음사위령종과보화종루 Ⓒ천승환
“처음에는 사실 분노의 감정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관련 장소를 가보니까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조선인을 도왔던 일본인들의 흔적도 보이더라고요. 지금도 그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일본 분들도 계시고요. 감정이 점점 차분해지면서, 학살의 역사뿐 아니라 그 역사가 지금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다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천 작가가 기록한 사적 중에는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기리는 위령비 12곳도 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로부터 며칠 뒤인 9월 2일은 베트남의 독립기념일이다. 비슷한 시기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두 나라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후 우리는 베트남전쟁에서 가해자가 되었다. 한 위령비는 밭 한가운데 있었다. 천 작가가 위령비 앞에서 참배를 마쳤을 때, 밭에 나와있던 농부들은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깜언"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베트남어로 고맙다는 뜻이었다.
"역사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전 참전이 우리나라에 경제적 이익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도 있었어요. 또 한국군도 고엽제로 고통을 겪었고요. 여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해요. 그 안에서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에게는 촬영 전 항상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전통 두루마기를 입고 향을 피우고 참배를 한 뒤, 청소를 하는 일이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작은 솔을 사용하여 묵은 흙과 곰팡이 등을 제거하고, 물을 길어와 씻어낸다. 작은 비석은 약 1시간, 큰 비석은 3시간도 걸린다. 본래는 비문을 사진에 정확히 담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으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추모의 의미를 지닌 행위로 바뀌었다.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학살 위령비 참배사진.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74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기억을 마주하는 방식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 전시는 그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며 직접 기획한 것으로, 그는 전시를 준비하며 고민했던 문제의식을 ‘부정적 유산에 대한 전시 방법’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포럼에 연사로 초청되어 그간의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전시를 진행했다. 미국 방문은 또 다른 프로젝트, ‘이방인’으로 이어졌다. 미국 서부지역 내의 독립운동 사적지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미국인들을 기리는 사적지를 좇아 낯선 땅을 기록했다.
그는 기록이 그 자체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성과 장소성,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고민하여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너머로 그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천 작가의 관동대지진 학살 관련 프로젝트는 오는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한 번 더 전시될 예정이다. 그가 남긴 기록과 질문을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적지 아카이빙 노션 링크
대한민국 국외사적지 지도 링크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