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유산, 한지의 내일을 보다  2025.11월호

한지를 지켜온 도시들

─전통 그리고 산업


전통한지 제작 공방 지도



국내 3대 한지 생산지와 전주한지

현재 국내에서는 전국 20여 곳의 공방에서 전통한지를 제작하고 있다. 전북 지역의 전주, 완주, 임실을 비롯해 원주, 안동, 문경, 가평, 괴산, 함양 등이다. 그중 국내 3대 한지 생산지는 전주와 안동, 원주로 꼽힌다. 


닥나무와 맑은 물이 풍부한 원주는 예부터 한지의 주요 생산지가 되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한지 재료인 닥나무가 원주의 특산물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 닥나무 밭이 많아 ‘닥나무 저(楮)’를 사용한 ‘저전동면’이라는 지명이 전해지며 지금도 원주시 호저면(好楮面)은 ‘좋은 닥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지명에 ‘닥나무 저’를 쓰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원주시 단구동을 중심으로 한지 공장이 15개나 문을 열고 있었지만 현재는 우산동 부근의 두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원주 한지는 영롱한 오색한지가 발달해 전지공예에 주로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원주한지’를 중심으로 230여 가지의 화려한 천연색 한지를 개발하는 등 색한지와 순지, 벽지 등을 생산하고 있다. 


안동 역시 풍부한 물과 닥나무,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을 바탕으로 전통한지를 지켜온 대표적인 지역이다. 주로 흡수성과 발산성이 있는 순한지를 전통의 방식으로 생산한다. 풍산읍에 자리한 ‘안동한지’는 1988년부터 현재까지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며 지역의 한지 명맥을 단단히 하고 있다. 안동 지역의 한지는 특히 동화사 제2석굴암, 경주 불국사,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복원 탁본용 한지 등으로 보급되며 중요한 문화재 복원과 보존에 많은 역할을 했다.




전주한지가 전국으로 유통된 기록이 담긴 '한지 유통 대장'


일본지리풍속대계에 실린 전주한지의 잿물과 불순물 제거 모습




3대 생산지 중에서도 전주는 한지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한지 제조업체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전주에 집중해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팔도 가운데 닥나무가 가장 활발히 생산되던 곳으로, 제지 기술자 역시 매우 많은 편이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시 전주와 남원은 각각 23명의 지장을 보유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한다. 종이 제조 기술과 인쇄기술이 민간에 널리 전해지며 완판본이라는 출판문화가 꽃피고, 전주부채 등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전주한지는 전라도의 문화를 세운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후 일제강점기 『한지 유통 대장』에서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으로 유통된 전주한지의 거래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까지도 전주가 한지산업의 중심을 이루는 배경이 되었다. 


현재도 전통 제조방식의 한지 업체 7곳과 기계 방식을 더한 곳도 여럿 운영되고 있어 전주의 한지 생산 규모는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다. 한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관련 공간 또한 풍부하다. 한국전통문화전당 내 한지산업지원센터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종이박물관으로 개관한 이후 한지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는 전주한지박물관, 2022년 새롭게 개관한 전주천년한지관, 인근인 완주에 자리한 대승한지마을 등이다. 


특히 전주천년한지관은 과거 한지가 왕성하게 생산되던 흑석골에 문을 열어 의미가 남다르다. 흑석골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평화제지, 호남제지 등 역사 깊은 제지공장이 집단으로 들어섰던 동네다. ‘한지골’로 불렸던 당시에는 주민 대부분이 한지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 한지의 수요가 줄며 이제는 그 명성이 잊혔지만, 전주천년한지관이 들어서며 몇몇 한지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흑석골의 전주한지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김혜미자 作 삼합상자


한지패션쇼




한지 산업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

전통한지의 유네스코 등재를 앞둔 시점, 각 지역에서는 한지 산업 활성화를 위한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까. 전북과 원주, 경북 등 일부 지자체는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해 전통한지 보존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오고 있다. 여기에 전주는 지난해 10월 ‘전주한지산업 육성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한지 산업 전반에 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주된 내용은 ‘품격 있는 전통한지’, ‘성장하는 기계한지’, ‘상생하는 전주한지’ 등 3대 전략과 7대 과제, 17개의 실행 계획으로 구성됐다. 구체적으로는 전통한지 후계자 양성 사업부터 원료 국산화를 위한 닥나무 식재 확대, 유통 및 소비 거점이 될 ‘K-한지마을 조성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안동의 경우 유네스코 등재에 대비해 기존의 조례를 새롭게 수정·보완했다. 한지 및 전통한지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고 지원대상을 제품 생산뿐 아니라 조사·연구, 가공, 유통, 홍보까지 넓혔다. 전통한지 수요처 확대를 위해 공공기관 홍보물이나 임명장, 중요기록물, 문화유산 보수사업 등에 한지 제품을 우선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주요 한지 생산 지역들은 매년 관련 축제를 열며 대중들에게 한지문화를 알리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전주국제한지산업대전은 올해로 29회를 맞았다. 1995년 전국한지공예대전으로 출발해 전주한지문화축제로 출범 이후, 최근 전주국제한지산업대전으로 명칭을 바꾸고 산업적 측면을 강화했다. 원주한지문화제와 안동한지축제 등도 전통한지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과 함께 산업, 예술, 건축까지 확장된 한지의 가능성을 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