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만든다  2026.1월호

산내는 지금 재즈가 제철이라죠

남원 살래재즈트리오




남원 산내면에는 ‘청년’과 ‘재즈’가 만나 만들어가고 있는 특별한 공동체가 있다. 할머니들과 마을회관에 누워 TV 보는 걸 좋아하는 장항마을 주민인 보석과 원백일마을 이장님 아들인 한결, 최근 매동마을로 이사를 와 산내와 친해지는 중인 원형까지. 음악을 전공한 세 청년이 모여 남원의 작은 마을 곳곳에 재즈를 전파하고 나섰다. 이름은 ‘살래재즈트리오’. 동네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산내를 ‘살래’라고 불러왔다. 그 어감이 좋아 이들은 자신들의 밴드 앞에 살래재즈트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연 날이면 이들은 삼거리에 모여 악기와 장비를 싣고 각자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크게 틀고 달린다. 복잡한 도심이 아닌 고요한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하듯 공연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매번 새로운 이웃을 만난다. 그 우연한 만남들이,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조금씩 불러 모으고 있다. 각자의 이유로 산내에 정착하며 마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3명의 청년. 트럼펫 장보석, 콘트라베이스 김한결, 기타 박원형으로 구성된 살래재즈트리오는 서로, 그리고 이웃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콘트라베이스 김한결



─주로 어떤 무대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나


한결 농촌 지역에 행사가 있으면 늘 트로트 음악이 행사장을 가득 채우는데, 저희가 그런 자리에 공연을 다니면서 “오 이런 행사에 재즈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군요!”라는 반응을 듣곤 해요.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들죠. 저희가 손수 기획한 공연 ‘지리산 캐롤 배달’이 떠오르는데요. 시골 동네는 연말이 되면 유독 더 춥게 느껴지거든요. 농사도 다 끝나고, 산내는 눈도 많이 오는 지역이라 밖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요. 그렇다면 모일 거리를 만들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동네를 넘어서 거대한 산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리산권 이웃 함양, 산청, 하동, 구례까지 지리산을 한 바퀴 돌며 캐롤을 배달하러 다니자는 아이디어가 모아졌어요. 그렇게 시작된 게 ‘지리산 캐롤 배달’입니다.


보석 논, 밭, 길거리에서도 자주 공연을 해요. 저희 주변엔 활동가 친구들과 이웃들이 많아서 직접 꾸린 장터나 개발 반대, 권리 투쟁, 연대 현장에서도 공연을 하는데요. 농산물이나 갓 구운 빵,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선물로 받을 때가 있어요. 공연이 끝나면 “고추장 필요하신 분?”, “포도는 집에 너무 많아서 괜찮아요” 같은 대화가 오가곤 하죠. 덕분에 조금 적게 벌어도 덜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묘미랄까요. 


원형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이 내 이웃이라는 점이 좋아요. 그들로부터 ‘우리 마을 음악가’를 응원한다는 마음을 느낄 때 음악인으로서 행복하죠. 공연 중에 무대로 술 몇 잔을 갖다 주는 것,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에 우리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것, 다른 지역에 가서 우리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 등을 경험하곤 해요. 이곳에서는 ‘무대’라는 엄중하고 딱딱한 위치에 오른다기보다는 이웃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수다를 나누는 기분과 가까운 것 같아요.



기타 박원형



─재즈는 시골 어르신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르다. 주민들과 가까이 소통하는 방법은 


보석 공연 날 검은색 옷을 입고 마을을 나서면 할머니들은 “또 나팔 불러 가냐”, “나도 한번 가보면 좋겠구먼”,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할 수 있나” 등의 반응을 보이세요. 생각해 보니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 마을 어르신들을 한 번도 초대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농촌지역에서 활동하는 특수성 때문인지 공연을 하러 가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어르신들을 비롯해 어린이, 농부, 활동가 등 2030 또래 관객이 대다수인 대도시 공연장과는 대조적이죠. 저희는 그들에게 익숙한 음악을 재즈로 들려주는 일에 흥미를 느껴요. 올해는 산내 어린이를 초대해 ‘동요 스탠다드’라는 공연을 열었어요. 동요 10곡 정도를 재즈로 편곡해 연주했죠. 


여름엔 활동가들을 초대하는 ‘민중가요 스탠다드’를 기획해 오래된 민중가요와 요즘 광장에서 새롭게 들리는 민중가요를 재즈로 편곡해 공연했어요. 다양한 요구에 응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건 어려움보단 더 많은 이야기와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즐겁기만 합니다. 내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트로트, 고전가요를 재즈로 편곡해 공연할 계획이에요. 어르신들은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마을과 역할 분담을 함께하며 공연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트럼펫 장보석



─작은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팀이 많지 않은 현실이다. 지역에서 살래재즈트리오와 같은 팀이 갖는 역할과 의미는 무엇일까 


원형 음악을 하는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음악을 하는 게 참 재미있어요. 이때까지 해오던 음악, 공연의 전형을 자꾸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어떠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역할을 위한 걸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소진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큰 곳에서 더 잘하기보단 지금처럼 마을, 지역, 이웃과 관계 맺는 음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보석 농촌은 소멸위기, 낙후지역 등의 납작한 편견이나 촌캉스, 시골감성 같은 말로 낭만적으로만 소비되기엔 너무나 다양한 색깔과 서사를 가진 곳이에요. 우리가 사는 마을만 해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인사도 나눠보지 못한 이웃, 몇 년 후면 사라질지 모르는 이야기 등 우리 지역에 대해 궁금한 게 무척 많거든요. 우리가 하는 음악에서 우리 마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결 살래재즈트리오는 낮은 곳과 작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역 사람에게 그 지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지리산을 넘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당신의 마을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