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만든다  2026.1월호

마을의 이야기는 마을의 손으로

영화로 기록되는 진안






진안의 마을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골 마을의 소소한 일상부터 모두가 공유하는 용담댐 수몰의 기억까지, 주민들은 자신의 삶을 스크린 위로 옮긴다.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배우이자 기록자가 되어 함께 공동체의 시간을 다시 엮는다. 그 중심에는 영화감독 임혜령 씨가 있다. 그는 <경치 좋은 자리>(2018), <종>(2022) 등을 통해 변화하는 진안의 풍경과 그 안에 쌓인 사람들의 기억을 꾸준히 영화로 남겨왔다.


이장님들의 한풀이 같은 영화

임 감독은 오랜 시간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이어왔다. 주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시나리오로 쓰고, 화면 속 인물로 등장한다. 귀농인과 기존 주민 사이의 갈등, 몇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엄나무의 이야기, 쓰레기를 태워 처리하던 시골의 오래된 관행까지, 영화의 소재는 모두 생활 속에서 출발한다. 한 작품에서는 실제로 쓰레기를 태워 오던 주민이 영화에 출연했다. 상영 이후 그 관행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이런 작업을 두고 “이장님들의 한풀이 같은 영화”라고 웃으며 말한다.


시골 마을에 가면 공동의 일이 있을 때 늘 나오는 사람만 나와요. 요리하고, 청소하고, 행사 준비하고요. 반대로 공짜로 무언가를 준다고 할 때만 얼굴을 비추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어떤 마을에서는 그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어요. 금슬 좋은 부부가 주인공인데, 할머니는 마을 일 있으면 늘 나가고 할아버지는 그게 답답해서 가지 말라고 하고, 그러다 다투게 돼요. 그런데 주민들이 ‘우리 때문에 두 분이 싸운 것 같다’고 느끼면서, 마을 일에 다 같이 참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예요.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은 아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읍내 상영회를 통해 다른 마을과 영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귀촌 주민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 영상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오래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어떤 설명보다 직관적인 마을 소개가 되기 때문이다.



진안봉곡마을의 영화 <봉곡멋쟁이> 

마을영화 시사회 

임혜령 감독




수몰의 기억을 다시 꺼내다

진안 토박이라면 모두가 기억하는 공통된 아픔이 있다. 바로 용담댐 수몰이다. 임 감독의 첫 장편영화 <경치 좋은 자리>는 용담댐으로 수몰된 마을을 배경으로, 친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수몰된 자리를 배회하는 장면에는 용담댐의 실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뜯겨나가지 못한 도로의 노란 중앙선, 물속에 남은 사진과 그릇, 잘려나간 나무의 밑둥들. 임 감독의 가족은 수몰의 경계선에 서 있던 당사자였다. 살던 집은 잠기지 않았지만, 다니던 학교와 익숙한 공간들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마을 공동체 수백 개가 한순간에 사라진 거잖아요. 한 도시의 공동체가 해체되면 겪게 되는 일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진안군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한 일이었고,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죠. 저는 초등학생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있어요. 보상금이 풀리면서 갑자기 큰돈을 손에 쥔 분들이 있었고, 사기를 당한 집들도 많았죠.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영화에는 마을 영화 작업에 참여했던 주민도 배우로 함께했다. 감독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점차 진안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상처로 확장됐다. 상영 후 반응은 엇갈렸다. 진안 곳곳을 돌며 영화를 상영했을 때, 아픔과 그리움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살던 공간을 왜 그렇게 우울하게만 그렸느냐”는 반응도 돌아왔다. 그 모든 과정은 가족과 마을 공동체가 수몰의 기억을 다시 꺼내 놓고 마주하는 시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이 문화를 그냥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생산하는 데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생 해오던 일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해보는 거잖아요. 영화관에 처음 와봤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상영회가 자연스럽게 토론의 자리가 되기도 해요. 언젠가는 지금까지 만든 마을 영화들을 모아 작은 영화제를 열어보고 싶어요.


누군가 대신 기록해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남기는 과정. 영화는 공동체가 그저 흘려보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