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봉곡마을 마을축제
이제는 추억 속에 사라져가는 단어가 된, ‘두레’라는 말이 있다. 과거 농촌에서 행하던 공동 노동의 방식인 두레는 공동체를 지탱하던 개념이었다. 기계가 없던 시절, 농사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고 함께 일하는 구조 자체가 곧 공동체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농업이 기계화된 오늘날, 농촌 공동체의 모습도 달라졌다. 지금 농촌에서 이야기되는 ‘공동체 회복’은 과거 농경사회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공동체를 새롭게 정의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농촌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마을이 있다.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의 봉곡마을이다. 여느 평범한 시골마을은 이제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그 비결을 묻는 마을이 됐다. 평범한 동네가 공동체 마을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이 마을이 지지고 볶아온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만났다.
외지인에서 이웃으로
진안은 2000년대부터 꾸준히 ‘마을 만들기 운동’을 이어온 지역이다. 주민 스스로의 참여를 원칙으로 삼고, 빠른 성과보다 단계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 마을 운동이다. 봉곡마을도 이러한 흐름 안에 있었다. 박후임·이재철 부부를 중심으로 귀농·귀촌인들이 들어오며 마을은 전환점을 맞았다.
박후임·이재철 부부는 2005년 봉곡마을에 귀촌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재철 씨”라고 불렀다가 남편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수군거림을 듣기도 하고, 교회에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아야 했던 풍경 등 서로 살아온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여러 어려움을 마주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과 기존 주민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반복됐지만, 서로의 문화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관계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지인이었던 이들은 점차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되어갔다.
마을의 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철 씨는 이러한 ‘텃세’를 시골마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봉곡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심 씨와 김 씨 집성촌으로, 수백 년 동안 문화적 유대와 삶의 방식을 공유해왔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도시 문화와 농촌 문화는 삶의 기반 자체가 다르다. 땅을 밟고 살아온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할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가능성이 열렸다.

박후임 · 이재철 부부
서로를 잇는 ‘공간’의 탄생
봉곡마을 공동체의 힘은 마을 곳곳을 채우는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난다. 2008년 문을 연 ‘행복한 노인학교’가 그 출발점이었다. 폐교된 봉곡분교 건물에서 한글 수업과 이야기 교실을 열고,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공부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재능 기부를 통해 컴퓨터반과 요가반, 도예반 등의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현재까지도 봉곡교회 교육관으로 자리를 옮겨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기존의 공간은 ‘해거름 갤러리’로 재탄생해 어르신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가 됐다.
다음해에는 ‘학선리 마을박물관’이 세워졌다. 마을박물관은 봉곡마을의 역사와 변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농기구와 가구, 생활용품 등 마을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물건들을 기증받아 조성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닌, 이곳에 살아가는 주민들과 그 가족, 출향민을 위한 공간이 되고자 했다.
마을에 쌓인 변화와 실천은 ‘문화공간 담쟁이’를 통해 외부로도 확장되고 있다. 도서관과 숙소, 강연장 등으로 활용되는 이 공간은 한때 대안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운영이 중단된 뒤 마을의 공유 공간이 되면서 새 역할을 갖게 됐다. 주민뿐 아니라 인근 장수·무주 지역 주민들까지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당에서는 매달 벼룩시장 ‘공유마당 썸썸’이 열려 서로의 물건을 나누기도 한다.

공유마당 썸썸
지난해에는 ‘봉곡 기억창고’가 새로 조성됐다.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얼굴과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디어 전시관이다. 어르신들의 이름이 적힌 USB를 꽂으면 각자의 이야기가 음성과 사진으로 재생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마을의 기억을 기록하고 함께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다. 결혼이나 육아 등 집안의 대소사를 담은 사진들도 전시돼 있어 마을의 개인사가 공동의 역사로 이어진다. 덕분에 마을을 떠난 자녀들에게도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추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만큼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마을공동체 조직의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있다. 부녀회와 노인회, 청년회를 비롯해 봉곡교회, 마을영농조합법인, 문화공간담쟁이협동조합 등 여러 조직이 마을 일을 나눠 맡고 공간을 관리한다. 영농법인이 체험과 견학으로 얻은 수익과 부녀회·청년회가 폐비닐과 재활용품을 처리해 마련한 수익은 모두 마을 공동의 재산으로 모이는 식이다. 이 돈은 마을 회의를 통해 사용처가 결정되며, 현재까지 조성된 기금은 마을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