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이끄는 서기석 이장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을이 되고 싶어요”

봉곡마을이 지금의 공동체 마을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서기석 씨는 그 과정에 함께하며 변화를 이끈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011년 마을에 귀향했다. 연로한 부모님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중년이 되어 다시 마을에 정착하던 당시,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마주했다고 전한다.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어른들은 저를 예뻐만 해주셨죠. 마을일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까 생각과는 전혀 달랐던 거예요.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들이 투명하지 않고, 기득권 몇 사람의 말에 따라가는 분위기가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어요. 이재철 위원장이 먼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연고가 없이 정착한 입장으로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어려운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목소리를 함께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익숙한 것들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니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매일 주민들과 싸워야했지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생활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 정당한 권한을 갖기 위해 그는 마을 이장에 도전했다. 그동안 추천제로 이어오던 방식이 최초로 온전한 주민 투표로 진행됐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까지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며 그는 마을의 규칙과 체계를 하나둘 다시 세워나갔다.

봉곡마을 공동체 활동
마을에서는 매달 여러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임원회의가 열린다. 과거에는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탓에 회의가 곧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제는 한 사람씩 발언하고 안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마을 공동 재산이 특정 개인의 명의로 관리되던 것도 단체를 설립해 마을 명의로 이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단돈 10만원을 쓰더라도 임원진의 결정 하에 사용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다보니 주민들 사이에도 신뢰가 쌓였다. “인자 마을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어”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곤 한다. 이런 과정은 공동체 회복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계였다.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서로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것. 쓰레기봉투 하나가 날아다녀도 누구든 먼저 주워서 버리는 일. 이런 것들이 저는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다 같이 변화해야하죠. 처음엔 그게 안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되더라고요.”
결국 사람이 없으면 마을도 사라진다. 그는 봉곡마을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역시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 먼저다. 살고 싶은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마을도 꾸준한 준비를 해야 하고, 그 과정은 절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 조성한 봉곡기억창고에 가면 저는 눈물이 나려고 할 때가 많아요. 거기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이 있거든요. 고향 친구들이 놀러오면 기억관에 꼭 가보라고 해요. 보다보면 자기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도 누군가의 사진 속에 같이 있어요. 그럼 친구들도 눈물을 글썽글썽해요. 마음이 동하니, 은퇴하면 마을에 돌아와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하죠. 한사람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지금처럼만 공동체가 유지되고 결속력을 갖다보면 마을에 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고, 오래도록 마을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을 활동 앞장서는 이창순 부녀회장
“무엇이든 시작하면 마음은 모아지죠”

이창순 씨는 이 마을에 산 세월만 40년이 넘었다. 1984년,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 봉곡마을에 왔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마을에서는 아직도 ‘젊은 사람’으로 통한다. 그 탓에(?) 올해로 3년째 부녀회장을 맡고 있다. 이런저런 마을의 행사와 활동에 앞장서는 그는 방금 전까지도 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의 점심을 챙기느라 앞치마 차림 그대로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소개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나는 그냥 시작을 위한 판을 까는 사람이야”.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민들은 기꺼이 따르고, 마음을 모아준다. 그 온화한 마음들이 커다란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씨앗이 된다.

2025 봉곡마을 마을축제
“소극적인 사람이 있으면, 그 옆에는 ‘같이 해보자’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그래도 우리 동네는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절반이 귀농귀촌 세대인 만큼, 그분들과 주고받는 이해도 중요해요. 귀농인들은 이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거든요. 그 사람들이 없으면 정말 몇 세대 남지 않고, 늙어간다는 걱정이 들기도 해요. 귀농귀촌 세대가 마을의 받침이 되어주고 있죠.”
젊은 귀농·귀촌인과 원주민들은 서로가 필요한 상황에 자발적으로 나서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그는 위원장, 이장과 함께 공동체 활동을 이끌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의 지혜를 실감한다고 전한다. 40년 세월 마을에 살아온 반토박이와 고향에 돌아온 귀향인, 새롭게 터를 잡은 귀촌인으로, 이들은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마을을 바라보며 ‘함께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