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에 사는 예술가의 공연을 보고, 윗집 사는 작가와 함께 시를 쓴다. 군산 말랭이마을 사람들의 일상이다. 월명산 자락의 비탈진 동네에 자리한 말랭이마을은 주민과 예술가가 섞여 특별한 공동체를 이룬다. 가난한 시절 복작복작 붙어있던 낡은 집들은 알록달록한 색을 입고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가난한 마을이 예술로 배부른 마을이 되기까지, 그 과정에는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우여곡절 많았던 말랭이마을 연대기
말랭이마을의 출발은 오래 전 2014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군산은 2009년부터 시작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월명동 일원의 원도심 살리기에 한창이었다. 신흥동에 자리한 말랭이마을은 1930~40년대 무렵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살던 주거지로, 6.25전생 시기 피란민들이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근대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말랭이마을 역시 변화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말랭이마을은 2014년 ‘전북특별자치도 대표관광지 육성사업’에 선정되며 본격적인 조성 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용역업체의 재정난, 사업계획 변경 등 여러 난관에 부딪치며 2017년 10월이 되어서야 착공했다. 다음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말랭이마을은 마을의 방향성을 다잡고 조성에 속도를 냈다.


말랭이마을 풍경
‘말랭이’는 산비탈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에서 따온 이름이다. 좁고 가파른 골목 사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벽화를 그려 넣고 작은 광장과 정원을 꾸몄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은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주민 구술 기록을 진행해 과거 이 마을과 연결되는 키워드들을 찾는 과정을 거쳤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던 추억을 살려 마을 가운데 우물 펌프를 설치하고, 실제 양조장으로 쓰이던 공간은 막걸리 만들기 체험 공간으로 복원하는 등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골목이 하나둘 채워졌다.
이외에도 1960~80년대 군산 서민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추억의 전시관, 옛 극장처럼 꾸며 군산 배경의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는 자유극장, 시대별 앨범과 축음기, 라디오 등을 전시해 음악을 통한 추억을 전하는 소리공간, 기성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이는 골목미술관,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마을 커뮤니티 공간 등이 조성됐다. 특히 마을공방은 어르신들이 수공예로 제작한 비즈 공예품들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주민들의 일터이자 놀이터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상주하고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방과 양조장은 현재 주민들이 말랭이마을협동조합을 설립해 이끌고 있다. 이전에는 건물을 무상으로 썼지만, 자치적인 운영을 위해 연 230만원의 임대료를 낸다. 체험과 판매를 통해 발생한 수익은 다시 마을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온전히 주민이 공간의 주체가 된 것이다. 기대만큼 큰 소득이 나진 않지만 자체적으로 이러한 소득 공동체를 형성한 점은 의미가 있다. 마을이 변화하는 모습을 경험하며 주민들은 스스로 마을을 가꾸는 힘과 자긍심을 키웠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