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랭이마을은 가난한 마을이라 가난한 사람이 살기 좋았다.
방 얻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인심이 좋아 정도 많아 좋았다. 지금은 부자가 된
마을 같아서 좋다. 우리 마을은 유명한 작가님들이 있고 유명한 마을로 발전되고 있다.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니 더 좋다.”
─말랭이마을 주민 김정엽 씨의 글 중
예술가와 원주민이 공동체를 이루며, 주민들의 문화 경험 기회도 늘어났다.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며 치열하게 살아온 어른들에게 배움과 문화는 늘 낯선 존재였다. 말랭이마을에서 이들은 이제 문화예술의 향유자이자 창작자가 되었다. 2023년부터 이어온 ‘동네글방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책방 ‘봄날의 산책’을 연 박모니카 작가는 동네 어머니들을 위한 동네글방을 열었다. 10명의 어머님들이 모여 매주 월요일마다 함께 글공부를 하고 시를 썼다. 글자 하나를 가르치면 그들의 마음에서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글로 쏟아져 나왔다.
봄에 벚꽃이 피면 다함께 나가 돗자리를 펴고 글공부를 했다. 꽃 사진을 찍고 꽃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썼다. ‘너는 피었다 져도 내년에 또 피는 인생인디, 나는 한번 가면 못 오는 인생이니 슬프구나. 잡초같은 민들레야, 네 인생이 부럽다’ 말랭이마을 골목을 걷다보면 시인 어머님들이 쓴 작품들이 걸려있다. 주민이 곧 마을을 채우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 된 셈이다.
박모니카 작가는 글방을 운영해온 이유와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당신들이 떠나도 남은 아들딸들이 우리 엄마가 이런 시를 썼네.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어머니들 스스로 삶에 대한 긍정과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동네글방은 단순히 한글을 배우는 시간이 아닌, 가난했던 시절의 근심을 시로 풀어낸 시간이었다. 이들의 시는 한권의 책으로 엮여 오랜 기록으로 남기도 했다. 공동체의 문화는 이처럼 새로운 문화가 꽃피며 풍성해진다.
시 쓰는 주민 이덕순 씨
“평생 고생한 손을 보면서 글을 써봤어”

말랭이마을 낮은 곳에 자리한 신흥 양조장에 가면 언제나 손맛 좋은 동네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 주방의 당번은 이덕순 어머니다. 이제 막 일흔을 넘긴 그는 평균연령 80대의 말랭이마을에서 막내다. 강원도 영월에서 군산으로 시집을 와 45년 넘게 이 동네를 떠난 적이 없다. 가난한 달동네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을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겪어냈다. 15년 전 남편을 보내고 혼자가 된 그는 홀로 살기에는 큰 집을 몇 년 전부터 게스트하우스로 꾸며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은 이곳 양조장에 나와 자리를 지킨다. 밝은 에너지를 내뿜으며 파전을 부치고 구수한 막거리를 판다. 동네글방의 모범생으로, 시 쓰는 실력도 출중하다. 그가 기억하는 말랭이마을, 앞으로 꿈꾸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어머님은 동네글방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시로 쓰셨나요?
나는 글방에 정말 열심히 다녔어. 우리 때만 해도 중학교를 거의 못 갔거든. 그때 못 배운 글을 이 나이가 되어서라도 배웠다는 게 신기해. 처음으로 시도 써보고, 그게 책으로도 나왔어요. 나는 그 책을 맨날 겁나게 읽어.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어.
선생님이 한번은 손을 종이에 그려보라고 하더라고. 평생 고생한 손을 보면서 글을 써봤어. 울퉁불퉁한 손을 그려놓고 지난 세월을 떠올리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 ‘손아 진짜 고생했다. 추운 겨울에 해망동 나가서 눈보라 속에 갈치 사세요. 조기 사세요. 얼마나 고생을 했나. 나의 손. 장한 나의 손’ 하면서 썼어. 내 손이 참 자랑스러웠지.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는 어떤 편인지요.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서로 왕래도 자주 하지. 최근에는 연극 작가님이 와서 우리 마을을 위한 연극을 하나 했어. 어르신들이 여기 몇 년을 살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다 듣고 그 이야기를 무대로 꾸며서 1인 연극을 했어. 그걸 보는데 눈물도 나더라고. 마을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 이야기를 직접 보니까 눈물이 나.

동네글방 시화전시회

이덕순 씨 작품
─과거 마을의 풍경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옛날에는 여기에 한 800가구가 살았지. 조그마한 집 한 채에도 여러 가족이 모여 샛방을 살고, 학생들도 한집에 서너 명이 자취를 해가면서 살았어.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객지 사람들도 다 이 동네로 오는 거야. 나도 40년 동안 바닷가에서 장사하며 먹고 살았지.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옹기종기 많이 모여 살았어.
그런데 여기 터널이 생기면서 집들이 하나둘 사라졌지. 원래는 저 위까지 다 집이었거든. 그때 대부분이 이주를 하고, 우리는 보상을 받고 이리로 내려왔어. 말랭이마을을 조성하면서 원주민들이 이사를 또 가다보니 이제는 한 40가구밖에 남지를 않았어.
─앞으로 꿈꾸는 말랭이마을은 어떤 모습인지요.
내 어릴 적 꿈은 여군이었어. 성격이 워낙 활발하잖아.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재밌게 사는 것 같아. 못다 한 공부도 하고 양조장에서 일하다 웃고 떠들고, 공방에서 팔찌도 만들고. 서로 먹고 살기 바빴던 옛날에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가깝게 지내질 못했거든. 캄캄한 새벽에 나갔다가 땅거미 질 때야 들어오니 왕래할 시간이 없었지. 마을이 개발되고 번창하면서 오히려 주민들이 모일 기회가 많아졌어. 이제야 서로 얼굴을 보고 살게 됐지.
걱정이 있다면, 우리가 나이가 많다보니 힘이 들기도 해. 공방이나 양조장이 어느 정도 소득이 되어야하는데 소득이 거의 없거든. 우리가 잘 벌어서 운영을 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갈수록 부족하지. 누가 되었든 계속 이 공간들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어. 그래도 아직은 이 나이에 내가 움직여서 일을 하고,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