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빚어온 술  2026.3월호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 전북의 가양주


전주전통술박물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는 ‘가양주’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가양주는 말 그대로 가정에서 빚은 술로, 집안에 손님이 오면 직접 담근 술을 내어 대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기후와 재료, 생활양식이 자연스럽게 술에 반영되며 다양한 토속주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가양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소주와 맥주, 와인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가양주 문화가 본격적인 위기를 맞은 것은 일제강점기 주세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전문가들은 이를 식민 통치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고, 전통 문화를 통제·말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정책으로 해석한다. 특히 가양주는 높은 세율이 적용되며 ‘밀주’로 규정됐고,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공포하면서 가정 내 주조 행위는 불법이 됐다. 이로 인해 소수의 대형 양조장만이 살아남으며 주조 산업은 거대 자본 중심으로 재편됐다. 동시에 외래 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조선 고유의 술 문화는 크게 훼손됐다. 해방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65년 제정된 양곡관리법으로 순곡주 생산이 금지되면서 다수의 토종술 계보가 단절됐다.



주세법 공포문ㅣ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환점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국제 행사를 계기로 ‘우리 술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1990년 주세법 개정을 통해 잊혔던 전통주들이 하나둘 복원되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향토술담그기'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며 지역의 전통주들을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이어 2010년 전통주 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지원도 본격화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감홍로, 이강주(이강고), 죽력고를 조선의 3대 명주로 꼽았다. 이 가운데 이강주와 죽력고는 전북 지역에서 전해져 온 술로, 전북이 우리 술 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전북 곳곳에는 이외에도 지역의 자연환경과 삶의 방식, 사람의 손을 따라 빚어져 온 뛰어난 술들이 많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전북 전통주를 중심으로, 그 술이 품은 이야기와 현재의 모습을 차례로 살펴본다.

 






        



전주 이강주 

증류주에 배와 생강을 더해 빚는 전주의 대표적인 가양주로, 주세법상 리큐르에 속한다. 이름도 배 ‘이(梨)’, 생강 ‘강(薑)’ 자에서 따왔다. 여기에 계피와 울금, 꿀 같은 재료가 더해져 은은한 단맛과 알싸한 향이 어우러진다. 도수는 높지만 목넘김이 좋아 예로부터 상류층에서 즐겨 마시던 술로 알려져 있다.


이강주는 전주 지역 조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온 집안 술이다. 조정형 명인의 선조들은 전주 부윤을 지낸 가문으로, 집안에서는 오랫동안 손님 접대를 위해 술을 빚어왔다. 이러한 가양주 전통 속에서 이강주는 6대에 걸쳐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때 전승이 끊겼다.


현재의 이강주는 후손인 조정형 명인이 복원한 것이다. 발효학을 전공하고 주류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그는 집안에 전해지던 비법을 바탕으로 반복적인 연구와 제조 실험을 거쳐 이강주의 맛과 품질을 안정화했다. 그 결과 이강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술로 주목받게 됐다. 현재 25도를 기본으로 다양한 도수로 생산되고 있으며, 외국에도 직영점을 두고 수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완주 송화백일주

완주 모악산 수왕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주다. 소나무에서 얻은 송홧가루와 솔잎을 우려내 술을 빚고, 100일 이상 숙성해 완성하여 주세법상 리큐르다. 수왕사는 이름 그대로 ‘물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사찰로, 예로부터 약수로 유명하다. 송화백일주는 이 약수를 사용해 빚는다.


절에서 전통주가 전승된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오래된 일화가 있다. 송화백일주는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마시던 술에서 시작됐다. 오랜 수행으로 생기기 쉬운 냉증이나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곡차'를 빚어 마신 것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승려들이 송화곡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 수왕사에서 수행했던 진묵대사도 이 술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 술은 주지 스님들에게만 비법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밀주 단속이 심했던 시기에도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현재도 절의 주지인 벽암스님(조영귀 명인)이 수왕사 인근에 송화양조장을 만들어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익산 여산호산춘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 일대에서 빚어와 여산 호산춘이라 이름 붙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청주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집안을 중심으로 전승돼 왔다. <가람일기>에도 “1956년 1월 1일, 만발한 매화와 한잔 마셨다.” 등 자주 등장한다. 가람 선생의 25대 조부 이현려는 고려 의종 때 '지다방사'로 재직하며 궁중의 살림과 음식을 맡았는데, 이때 빚던 술이 호산춘의 뿌리로 전해진다. 이로인해 궁중에서 널리 알려지며 궁중술로 불리기도 했다. 


밑술·중밑술·덧술을 차례로 빚는 삼양주로, 주세법상 약주다. 술빛이 맑고 도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며, 일제강점기 밀주 단속에서도 묵인되어 제조될 정도로 깊은 향과 맛을 지닌 술로 평가받는다. 가람 선생의 동생이자 독립유공자인 이병석 선생의 외손자인 이연호 명인이 그 맥을 잇고 있었으나, 지난 1월 작고하였다. 현재는 자녀들이 전수자로 활동하며 그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 중이다.  



김제 송순주 

소나무의 새순을 재료로 빚는 송순주는 김제를 비롯해 대전·함양 등지에서 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주다. 특히 김제의 송순주는 경주김씨 집안에 뿌리를 둔 가양주로, 숙성된 밑술에 송순을 섞어 덧술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소주를 섞어 만드는 약주다. 집안에 술 만드는 전통이 시작된 사연도 함께 전해진다. 조선 선조 때 김탁이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생하자, 그의 부인이 여승에게서 소나무 순으로 담근 술이 몸에 이롭다는 말을 듣고 양조법을 익혀 남편에게 먹였고, 이후 병세가 나아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송순주는 궁중에도 알려졌다.


송순주는 이후 집안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승됐다. 밀주 단속이 심하던 시기에도 대문을 걸어 잠근 채 제사용으로 조금씩 술을 빚었다고 한다. 가문의 며느리 김복순 씨가 1987년 보유자로 지정돼 맥을 이었으나, 그의 작고 이후 후계자가 없어 전승이 멈춘 상황이다. 현재 김제 지역사회에서는 송순주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읍 죽력고 

대나무에서 얻은 진액인 죽력을 사용한 전통 약용주로, 주세법상 일반 증류주다. 중풍이나 기력 회복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예로부터 약으로 함께 쓰여 왔다. 3년 이상 된 대나무를 쪼개 항아리에 넣은 뒤, 항아리에 황토를 붙이고 왕겨를 붓는다. 이렇게 되면 불이 서서히 타들어 가며 은은한 열기로 대나무가 달궈진다. 이때 흘러내린 죽력에 여러 약재를 더한 뒤 소주를 내려 증류해 술을 완성한다. 은은하고 맑은 대나무 향이 특징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죽력고는 송명섭 명인의 집안을 통해 이어져 왔다. 명인의 외증조부가 고부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약술로 빚기 시작했고, 그 제조법은 어머니를 거쳐 송명섭 명인에게 전승됐다. 명인이 어린 시절,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죽력고를 내려 약으로 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조선 후기 문신 우암 송시열은 문집 『송자대전』에서 죽력고를 '진시절미(眞是絶味)'라며 극찬했다. 조선 말기 황현의 『오하기문』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던 중 주민들이 건넨 죽력고를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맥은 이어지지만, 산업화의 길은 멀다”

정읍 죽력고 전수자 송경민 씨 



정읍에서 이어져 온 죽력고는 대나무에서 얻은 맑은 진액, 죽력(竹瀝)을 넣어 빚는 술이다. 한때는 비교적 널리 마셨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맥이 끊겼고, 이후 송명섭 명인 집안에서만 명맥을 이어왔다. 그 전통은 명인의 딸이자 죽력고 전수자인 송경민 씨가 잇고 있다. 어린 시절 손수레에 술을 싣고 배달을 돕던 그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2014년부터 죽력고의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가업을 잇기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갈수록 전통주의 산업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송씨로부터 그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전통주의 미래를 들었다. 


─지금은 거의 맥이 끊긴 죽력고가 정읍에서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급합니다. 

정읍의 죽력고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저희 할머니 덕이 가장 커요. 죽력고에 꼭 들어가는 약재가 있어요. ‘죽력’이죠. 이 죽력은 대나무에서 진액을 받아내는 기술이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 외갓집이 한약방을 했거든요. 덕분에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죠. 약술인 죽력고를 만들줄 아는 할머니가 양조장 집안으로 시집 오면서 다른 집안에서 맥이 끊긴 술이 정읍에서는 이어질 수 있었어요. 그러니 아버지에게 죽력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어머니가 빚던 술, 집안의 기억 같은 존재였죠. 


─죽력고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2002년에 국순당에서 ‘아름다운 우리 술을 찾습니다’라는 전통주 공모전을 열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갖고 있던 전통 방식으로 죽력고를 빚어 출품했는데,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곧바로 상업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주류에는 약재 사용이 제한돼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오래전부터 죽력고가 빚어졌다는 기록을 찾기 위해 서울을 오가셨죠. 나중에는 아예 대학(법학과)에 들어가 주류 관련 법령을 직접 공부하셨어요. 결국 법이 정비되고 나서야 2004년에 정식으로 제조와 판매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지요? 

아직도 전통주는 ‘어르신들이 드시는 술’, ‘저렴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우리 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기록도 많이 사라지고, 맥도 끊겼잖아요. 와인이나 양주, 사케 등에 못지않게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런 이유로 저평가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증류주는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지죠. 위스키나 와인처럼 생산된 연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예요. 그런데 전통주는 신선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제조된 날자에 민감합니다. 아이러니하죠. 


─원재료와 관련해 제도적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통주의 기본은 결국 '쌀'이에요. 그런데 쌀에 대한 가치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와인에는 '떼루아' 라고 하는 개념이 있어요. 주재료인 포도를 재배할 때 영향을 끼치는 환경을 말하는 용어인데, 각 지역의 떼루아가 브랜드화되어서 고유한 개성을 나타내기도 해요. 포도밭이 없으면 양조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도 있죠. 하지만 쌀이 주가 되는 전통주는 논이 없어도 술을 만들 수 있죠. 오히려 직접 재배한 쌀을 쓰면 원가 계산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아 불리한 부분이 있어요. 가족이 함께 재배하면 인건비 인정도 쉽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가격 경쟁력을 위해 값싼 수입산 쌀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요. 모순적인 부분이죠. 


─전통주 산업에서 세율 문제도 자주 언급되던데요. 

죽력고는 증류주라서 세율이 높아요. 물론 전통주로 인한 세금 감면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금이 판매 금액의 절반 가까이나 됩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재료비, 인건비 빼고 남는 게 많지 않아요. 반면 막걸리는 탁주로 분류돼서 세율이 5% 수준이거든요. 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은 많아도 증류주를 만드는 주조장은 적은 이유이기도 해요. 


무형유산 지정이나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으면 세제 혜택이 있지만, 그 조건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아요. 지역특산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써야 합니다. 저희처럼 직접 농사를 짓거나, 쌀 생산량이 높은 전라도 지역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도시 구조에 따라서 원재료 수급이 어려운 지역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의 전통주는 힘을 잃게 되는 겁니다. 결국 전통주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술맛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구조의 문제인 셈이죠.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