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서 술 빚는 사람들  2026.3월호

익산의 자연, 양조장에서 무르익다

초이리 브루어리 최상은 대표


최상은.이경택 부부



익산의 시화인 국화, 대표 특산물로 꼽히는 고구마, 떠오르는 효자 작목인 딸기까지. 익산의 자연이 각기 다른 빛깔의 전통술로 탄생했다. 도심 가운데 자리한 작은 양조장 ‘초이리 브루어리’를 통해서다. 2022년 문을 연 초이리 브루어리는 술을 사랑하는 남편 이경택 씨와 그 꿈에 기꺼이 함께한 아내 최상은 씨가 운영하고 있는 양조장이다. 부부의 성을 하나씩 붙여 지은 이름 ‘초이리’는 익산의 옛 지명인 ‘이리’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이름처럼 이들은, 나고 자란 도시인 익산 안에서 새로운 전통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상은 대표를 통해 부부가 빚어내는 특별한 전통주 이야기를 만났다. 


익산 표 고구마 소주의 탄생

이곳 양조장에서는 ‘초이리 시트러스13’, ‘초이리 딸기13’, 등의 탁주와 약주인 ‘초이 국화16’, 소주에 속하는 ‘리28’ 등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 가장 처음 선보인 술은 국화 약주였다. 합성감미료와 첨가물 없이 느리게 발효한 약주에 익산의 시화인 국화로 향을 입혔다. 부부는 전통주와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이후, 재배 농가는 많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익산의 딸기에 주목하며 설향 딸기를 이용한 막걸리를 출시했다. 






다양한 전통주 중에서도 2024년도에 개발한 ‘리28’의 인기는 남다르다. 익산에서 자란 고구마로 만든 일명 고구마 소주다. 쌀이나 보리가 아닌 고구마를 원료로 한 소주는 국내에서 흔히 접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고구마 소주를 대중적으로 즐기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주종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구마 소주도 나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 고문헌에는 고구마의 옛 표현을 사용한 '감저주(甘藷酒)'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구마는 양조에 필요한 전분이 풍부한 덕에 소주의 원료로 주목할 만하다. 부부는 익산의 특산물인 고구마를 전통주에 더하는 시도를 하며 ‘익산 표’ 고구마 소주를 만들었다. 


“쌀소주는 이미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지역색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익산 농가의 고구마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굉장히 비싸고, 상한 부분을 하나하나 도려내고 씻어야 하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다른 곡물에 비해 고구마에서는 다채로운 향기가 나요. 은은한 단맛도 매력이죠. 잘 만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가 만드는 고구마 소주는 ‘베니하루카’라는 품종의 꿀고구마를 사용한다. 고구마 자체의 당도가 높아 술을 빚었을 때도 부드러운 단맛을 낸다. 원료 외에도 술의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위생과 술을 빚는 순간의 감정이다. 술 생산 공정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존재는 발효미생물이다.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만큼 최 대표는 미생물을 관리하기 위한 위생에 가장 집중한다. 또 하나의 원칙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한 날에는 술을 빚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그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술맛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낸다고 전한다. 이런 점이 바로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전통주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지역을 대표할 수 있다는 자부심

양조장은 남편 이경택 씨의 오랜 꿈이었다. 술을 좋아하다보니 만드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진 남편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전통주를 공부했다. 멀게만 느껴진 꿈이었지만, 익산시의 청년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부부는 양조 사업에 덜컥 뛰어들게 되었다. 최 대표는 직장 생활의 경험을 살려 앞장서 양조장의 경영을 도맡았다. 자연스레 전통주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며 지금은 전통주 시장에서 주목받는 어엿한 양조인이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부담도 따르지만, 익산을 대표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곧 그의 동력이 되고 있다.


“전통주는 이름 자체도 고리타분하고 사실 주류 시장 안에서 굉장히 작은 시장이에요. 우리나라 전체 주류 시장에서 1%가 조금 넘는 수준이거든요. 국민들의 관심이 아직 부족한 현실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앞으로 더 무궁무진하게 발전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해요. 술을 무작정 많이 마셨던 시대가 가고 주류문화 자체가 변화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면 우리 전통주를 찾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전통주 페어링 시음회




익산은 어떤 지역보다도 생산성이 높은 특화 작목이 많다. 그만큼 전통주에 담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재료도 많은 셈이다. 최 대표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서동마’이다. 익산의 서동설화와 마를 접목한 대표 브랜드로 막걸리를 빚어보는 등 재미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익산이 관광도시나 산업도시로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익산을 대표할 수 있는 술, 그리고 다른 지역에 더 잘 알려진 농산물들을 같이 알리는 이런 시도가 많아져야 해요. 대표 작물인 마도 알리고 우리 술도 알리고, 지역도 알릴 수 있다는 게 저로서도 너무 뿌듯한 일이죠.”


부부는 여행을 다니며 늘 그 지역의 양조장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때의 자신들처럼 전통주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 하는 이들을 위해 초이리 브루어리의 양조장은 열려있다. 양조장 투어와 체험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전통주의 가능성을 조금씩 확인하곤 한다. 최근에는 완성된 술을 만날 수 있는 판매 공간도 마련했다. ‘초이리랩’이라는 이름으로 꾸민 이 공간은 구체적인 운영 계획을 세워 올해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이들이 그리는 궁극적인 목표는 넓은 생산 시설과 판매 공간을 함께 갖추는 일이다. 작은 양조장으로 출발했지만, 언젠가는 익산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 되는 날을 꿈꾼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