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이재운 부부
1894년, 고부에서 시작된 봉기는 전국으로 번져 혁명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정읍. 1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혁명이 술로 태어났다. ‘귀리귀인’(대표 이재운)이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담아 선보이고 있는 ‘1894 시리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꿨던 1894년의 외침. 오늘 그 정신을 이어 정읍의 특산물인 귀리를 주재료로 삼아 이 땅과 하늘, 사람의 손길을 한 병에 담아내고 있다.
땅에서 술로 이어진 귀리
귀리귀인의 술은 정읍의 특산물인 귀리로 만들어진다. 정읍은 국내 최대 귀리 생산지지만, 그동안 귀리는 선식이나 가공식품으로만 활용될 뿐 술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이재운 대표는 2018년, 정읍 도시재생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귀리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귀리 재배는 겨울철 유휴 농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국내 최초의 귀리술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현재는 귀리 농사까지 직접 짓고 있다.
“양조 교육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아 관련 문헌을 참고하며 독학으로 연구했어요. 귀리가 단백질과 지방이 많다 보니까 만든 술 위에 기름이 둥둥 뜨고, 맛도 깔끔하게 안 나오는 거예요. 잡맛이 자꾸 생겨서 몇 번을 해도 마음에 안 들었죠. 술을 빚었다가 통째로 버리기를 1년 넘게 반복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시음해 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그렇게 하나씩 맞춰가면서 지금의 맛을 만든 겁니다.”

귀리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며, 귀리 특유의 떫은맛은 전처리를 통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도수가 높음에도 목 넘김이 부드러워, 마시는 사람도 취하는지 모를 만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오크 숙성을 더해 깊은 향과 풍미를 살린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고급스러운 위스키 맛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일본의 히비키, 미국의 버번처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위스키가 있지 않습니까.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술도 존재하고요. 한국이라고 못 만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주 업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품질을 높여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개발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증류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동학에서 녹두까지, 술로 만드는 이야기
귀리귀인의 양조장이 자리한 정읍시 고부면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폭정에 맞서 농민들이 봉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재운 대표는 바로 이 고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더구나 아내인 전효숙 씨는 전봉준 장군과 같은 무장 전씨 집안이다. '동학'은 그래서 더욱 각별했다.

사실 술에 동학농민혁명을 담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역사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 부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뿌듯함이 더 크다고 말한다. 해마다 열 차례가 넘는 전국 박람회를 돌며 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술 한 병이 사람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다.
“지금도 동학농민혁명이라 부르지 않고 ‘농민의 난’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지역일수록 혁명이라는 표현을 꺼리죠. 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호불호가 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축이고, 정읍 사람으로서 이 역사를 더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1894 시리즈는 도수 별로 세 가지로 나뉜다. 19도 '1894 동학', 25도 '1894 고부', 45도 '1894 혁명'. '동학'농민들의 이야기가 '고부'에서 발원해서 '혁명'으로 승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에는 ‘1894 녹두’라는 약주도 개발 중이다. ‘녹두장군’으로 불렸던 전봉준을 떠올리며 녹두를 원료로 쓴 술로, 올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준비 중인 술이 여럿이다. 한동안 인기가 높았던 귀리 막걸리를 다시 선보일 계획이고, 정읍의 또 다른 특산물인 숙지황과 건지황을 활용한 제품도 연구하고 있다. 지황은 쌍화차를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한 병의 술에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귀리귀인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