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서 술 빚는 사람들  2026.3월호

맥주도 로컬푸드가 될 수 있다 

메인쿤 브루잉 이정원 대표


이정원 대표



과거 만선을 이룬 배와 사람들로 북적였던 군산 죽성포구. 일명 째보선창이라 불렸던 동네는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2021년, 특별한 공간이 골목에 불을 밝혔다. 방치된 옛 어판장 건물을 되살려 만든 군산비어포트다. 군산에서 수확한 보리로 맥주를 생산하고 함께 모여 판매하는 공동 판매장이자 체험관이다. 바다가 한눈에 담기는 공간 안에 4개 업체가 나란히 간판을 걸고 있다. 


군산비어포트의 출발은 도시재생과 함께 지역의 특산물인 보리를 살리자는 시도였다. 군산시는 보리 재배부터 맥아 가공, 양조, 판매까지의 전 과정이 가능한 생산체계를 갖추고 청년들을 모았다. 전문 양조 교육을 거친 이들은 지역의 서사가 담긴 개성 있는 수제맥주를 개발하고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로컬 맥주 브랜드들이 모여 지금의 비어포트가 문을 열었다. 국내 맥주 업체 대부분이 수입 맥아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농업과 도시재생, 청년 창업이 상생하는 이러한 구조는 주목할 만한 시도다. 




군산 비어포트



현재는 ‘메인쿤 브루잉’, '크래프트 월명', ‘해적 브루잉’, '운룡양조' 4개의 업체가 군산비어포트에 속해있다. 그중에서도 알록달록한 네온사인으로 이름을 단 ‘메인쿤 브루잉’은 개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조 업체 중 하나다. 군산에서 나고 자란(?) 맥주답게 ‘메이드 인 군산’을 줄여 메인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표인 이정원 씨는 이곳에서 군산의 이야기를 담은 8종의 맥주를 만들고 있다. 100% 군산 보리만을 사용해 만든 째보선장 라거부터, 묵직한 맛을 내는 해망굴 스타우트, 특유의 고소함이 특징인 서해의 맛 엠버에일 등 군산의 다양한 풍경을 맥주로 담아냈다. 


“군산의 명소들에서 영감을 받아 맥주에 이름을 붙였어요. 해망굴은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잖아요. 무게감이 있는 흑맥주와 그 이미지를 연결해 ‘해망굴 스타우트’를 만들었어요. 노을 질 때 서해바다와 색깔이 닮은 맥주에는 ‘서해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솔직히 수입 맥아에 비하면 군산 맥아는 월등히 비싸요. 하지만 그만큼 신선함도 다르죠. 정형화된 맛이 아니라 생산자마다 다른 생각으로 술을 만들다보니 그 사람만이 주는 스토리도 있어요. 그 서사들이 하나의 안주거리가 된다는 점이 대기업 맥주와는 차별화되는 부분이죠.”



군산의 명소로 이름 지은 메인쿤 브루잉의 수제맥주



이정원 대표는 20대에 바텐더로 일하며 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후 월명동에서 자신만의 바를 운영하며 다양한 수제맥주를 접하게 됐다. 늘 먹어오던 맥주와는 다른 오묘한 수제맥주 맛에 궁금증을 느끼던 그는 때마침 군산시의 수제맥주 양조 교육에 참여하며 맥주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어느덧 6년차 양조인이 된 그는 수제맥주를 통해 전국 곳곳에 군산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의 축제와 행사, 팝업 현장을 통해서다. 주류 시장의 유행도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갈수록 수제맥주의 수요도 줄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 발로 뛰어야하는 현실이다. 그는 맥주를 만드는 일보다도 판로를 확보하는 일이 현재는 더 어렵다고 전한다. 지역특산주를 포함한 전통주는 주류 중 유일하게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바 있지만 수제맥주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온전히 오프라인 판매에 주력해야하는 상황이다 보니 늘 다양한 판로를 고민하고 있다. 


“작년에는 20개 이상의 행사를 뛴 것 같아요. 서울 박람회부터 대구, 부산, 진해, 광주 등등 수요를 찾아서 어디든 가고 있죠. 어느 곳에서든 저희가 보이니까 ‘여기 또 나왔네!’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만큼 열심히 움직이고 있죠. 저희는 일단 망하더라도 나가요. 돈을 못 벌더라도 많이 알리고 싶거든요. 지난해 군산에서 열린 짬뽕축제 때는 맥주가 모자랄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이런 기회가 많아져야 그래도 버틸 수 있죠.”






남다른 열정으로 그는 월명동 일대 상인들과 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별도의 지원 없이 상인들과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월지로 골목 야시장’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이 몰리며 침체된 골목 상권을 살리는 민간 주도의 축제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 이 대표의 고민은 자체적인 양조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현재는 시가 제공하는 양조 설비를 통해 맥주를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장기적인 운영을 위해서도 메인쿤 브루잉만의 양조 공간을 만드는 일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행히 좋은 공간을 만나 천천히 안을 채워가고 있는 단계다. 그는 이제 술도 경험하는 문화로 변화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둘러보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열린 양조장’을 만들 계획이다. 


“이제는 체험이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원데이 클래스 같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해서 저희가 만든 것들을 보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단지 술을 판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험과 관광 상품을 판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주류 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3월 말 열리는 군산 벚꽃 야시장 현장에서 그는 새로운 맥주를 선보인다. 이름부터 지역민들의 눈길을 끄는 ‘군산 시민맥주’다. 기성 맥주들과 경쟁하기 위해, 기존의 수제맥주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맥주를 만들었다. 군산 쌀과 보리를 사용해 지역성과 품질을 높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머지않아 군산 시민맥주가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