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레지던시 현주소를 읽다  2026.4월호

새로운 흐름을 끌어들이는 팔복, 지역을 단단하게 하는 동문
전주문화재단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 ‘동문창작소’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7기 입주작가



현재 전북 지역에서 레지던시를 직접 운영하는 문화재단은 전주문화재단이 유일하다. 지역 문화재단들이 레지던시 사업을 축소하는 흐름 속에서, 전주문화재단은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레지던시 공간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


전주문화재단은 팔복예술공장의 창작스튜디오와 전주한옥마을 인근 동문길의 동문창작소를 운영한다. 두 공간 모두 작가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시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운영 방식은 다르다. 한쪽은 새로운 작가와 이야기를 들여오며 지역 예술계에 자극을 주고, 다른 한쪽은 지역 작가들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는 비교적 전형적인 레지던시 형태로, 전주와 다른 지역을 잇는 창구 역할을 한다. 입주 작가 대부분이 타 지역에서 오는데, 이들은 일정 기간 전주에 머무르며 지역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여기에 비평가 매칭, 워크숍, 리서치 프로그램 등이 더해지며 작업을 넓혀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담론과 시선이 지역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이다.


반면 동문창작소는 지역 내부를 다지는 것에 무게를 둔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작업 공간과 전시 비용 등을 지원한다. 한옥마을 인근 동문길이라는 위치 덕분에 시민과의 거리도 가깝고, 지역에 밀착된 프로그램도 꾸준히 이어진다. 주민들에게는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된다. 물론 이러한 운영 방식에는 경계해야 할 지점도 있다. 팔복예술공장의 전문성이 지역사회와 격리된 섬으로 남거나, 동문창작소의 시민 친화적 성격이 예술가의 전문적 고민을 단순한 이벤트로 소모할 위험이다. 그럼에도 두 공간은 레지던시가 단순한 작업실을 넘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8기 결과보고전 박경진 작가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공간



작가를 들여오고 키우는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3월, 새로운 작가들이 입주하며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는 분주한 분위기다. 이번 입주작가들은 9기로, 27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6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내년이면 10년을 맞는 이곳에는 2025년까지 총 71명의 작가가 거쳐 갔다. 운영 기간이 오래된 만큼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었고, 전북을 넘어 외부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레지던시로 자리 잡았다. 창작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이규원 주임은 이곳을 작가들의 '인큐베이팅' 공간이자 전주와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는 작가의 작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둔다. 입주 작가들은 자유 토론 프로그램인 ‘팔복살롱’을 시작으로 작업 성향에 맞춘 1대1 비평가 매칭 과정을 거친다. 외부 비평가와 함께하는 비공개 비평과 공개 비평을 병행하며 작업의 밀도를 높인다. 상반기에는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리서치를 진행하고, 하반기에는 국내외 전시 관람을 통해 시각을 확장한다. 이후 네트워크 교류, 세미나, 오픈스튜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쳐 결과보고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입주는 시각예술 분야로 한정되지만 장르의 폭은 넓다. 설치, 회화, 영상부터 한국화, 사운드아트까지 다양한 작업이 이곳을 거쳐 갔다. 과거에는 기획입주를 통해 장르의 확장도 시도됐다. 2018년에는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나데주 데르데리앙이 참여했고, 2020년에는 국악 작곡가 김영상, 해금 연주자 송찬양 등 공연예술가들이 입주해 장르 간 교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팔복예술공장은 지역을 한정하지 않고 작가를 선정한다. 다양한 지역의 작가들이 전주에 머무르며 작업하고, 그 과정에서 지역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일부가 된다. 이규원 주임은 입주 심사에서도 ‘전주에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전한다. 상반기 전북 지역 리서치를 통해 지역의 소재를 끌어들이고 이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한 소재 차용을 넘어 작가의 세계관과 지역성이 맞물리며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입주 작가들의 결과보고전에는 주목할 만한 작업이 많았다. 전지홍 작가는 평소 길과 공간의 서사를 지도 형태의 회화와 설치로 풀어내는데, 팔복에 있으며 전주 한지를 소재로 작업했고 대둔산 등 지역의 지리를 작업에 담았다. 영상 작가 양은경은 전주에서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단편 <섬광>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전주랩’에 선정되기도 했다. 


입주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작가들은 전주와 팔복에서의 경험을 이어간다.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이곳을 언급하고,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며 자연스럽게 전주와 팔복예술공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홍보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팔복예술공장은 다음 단계를 모색하고 있다. 이곳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리고 왜 팔복예술공장에 레지던시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동시에 작가 중심의 운영 구조 속에서 지역과의 접점을 어떻게 넓혀갈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작가의 전문적인 작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작업 자체가 시민과 자연스럽게 맞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주민 대상 원데이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동문창작소 입주작가협의체 대표인 임희성 작가(왼쪽), 전주문화재단 생활문화팀 손경은 차장




골목에 예술이 스며드는 '동문창작소' 

전주 한옥마을 인근 원도심 골목인 동문길은 홍지서림, 한가네서점, 창작소극장, 삼양다방 등이 자리한 오래된 문화의 거리다. 10여 년 전 동문예술거리추진단이 활동하며 예술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예술공간 ‘공유화음실’이 개관하며 그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공실이 늘어나고 헌책방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골목의 분위기도 점차 잦아들었다.


재단은 이곳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민 밀착형 레지던시 ‘동문창작소’를 기획했다. 2023년 문을 연 동문창작소는 현재 2기 작가들의 결과보고전을 마치고 새로운 입주 작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주에 주소지를 둔 지역 작가들이 입주해 작업 공간을 지원받고, 인근에 상주하는 생활문화팀이 현장에서 작가와 호흡하며 운영을 이어간다. 


삼양다방 건물 2층에 있는 1호점은 9개의 작업실과 수장고를 갖추고 시각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한다. 작가들은 매년 두 차례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시민들과 만나고, ‘공유화음실’에서는 입주 작가들의 릴레이 전시 <동문그림가게>가 이어지며 주민들과 일종의 자기소개(?)를 한다. 최근에는 지난 1년 간의 결과를 담은 결과보고전 ‘라이프 展’도 선보였다. 2024년 6월 충경로에 문을 연 2호점에는 서예 작가들이 입주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페 '이리베'에 전시된 박성수 작가의 '엄마'



동문창작소의 특징은 작가와 지역이 비교적 느슨하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는 데 있다. 입주 작가들은 재단 인력은 물론 인근 상인,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작업을 이어간다. 입주 작가 협의체를 구성해 공간 운영에 참여하고, 관리비를 분담하는 등 자율적인 운영 구조도 만들어가고 있다.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가 관객이 직접 '찾아가는' 성격이라면, 동문창작소는 골목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동문길 카페와 식당, 소품샵에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까지 연결하는 ‘샵인샵’이다. 상인회가 직접 작품 선정과 전시 디피에 참여하면서 예술과 상권이 맞닿는 접점도 만들어지고 있다. 평소 드나들던 공간에서 작가와 작업을 만나게 되면서, 주민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문턱도 한층 낮아진다. 


동문창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손경은 차장은 미래에 대한 고민도 내비친다. 공간과 예산의 한계로 인해 지원이 작업실 제공이나 전시, 단기 프로그램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은 만큼 이들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원에 대한 필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올해부터는 시각예술 중심에서 문학과 웹툰 등으로 장르를 확대하고, 전주에 한정됐던 입주 자격도 완주까지 넓혔다. 전시뿐 아니라 강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해 시민과의 접점을 더 넓혀갈 계획이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