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레지던시 현주소를 읽다  2026.4월호

민간 레지던시의 기반을 다지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


에보미디어레지던시 2024_전주 플랜씨 협력공간-커뮤니티 프로그램



지역 내 미술관이나 예술단체에서도 크고 작은 레지던시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민간 레지던시의 출현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하 전북재단)의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도내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지원해 그 기능을 간접적으로 실현한다. 전시와 작업실, 숙박공간을 포함하는 거주형 지원과 숙박을 제외한 비거주형 지원으로 나누어 매년 4개 내외의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선정된 단체는 입주 작가 역량강화 프로그램과 지역 주민과 연계한 공공프로그램을 각각 2회 이상 운영해야 한다. 공간 지원과 함께 창작지원금 편성 또한 필수 요건이다. 예술인에게는 안정적인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입주 작가와 지역 주민 간의 소통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도 문화재단이 설립되기 이전인 2010년도부터 전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사업을 통해 지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해왔다. 전북재단이 정식 출범한 2016년 당시에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이라는 명칭으로 그 역할을 이어갔다. 이후 2018년을 기점으로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 레지던시 운영 단체를 지원해오고 있다. 


2018년 개편 당시 이 사업은 2억 5천만 원의 예산으로 최대 6개 단체를 지원했다. 그러나 2021년, 1억 3천만 원으로 예산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다음해 조금 늘어난 1억 7천만 원의 예산이 편성되며 현재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예산이 크게 줄며 지원 단체의 수도 그만큼 줄었지만, 장르의 범위를 넓히는 등 여러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시각예술과 문학에 한정되던 지원 기준을 영상 콘텐츠 분야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했다. 


다양한 예술단체와 기획자의 아이디어, 개성이 결합된 민간형 레지던시들은 지역의 예술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디자인에보의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 연석산우송미술관의 ‘우마레지던스’는 다년간 지원을 통해 지역의 대표 레지던시로 자리 잡았다. 두 프로그램은 재단의 지원사업 시행 초기부터 7년 여 동안 사업에 참여하며 긴 시간 레지던시 사업을 이어왔다. 각 단체의 정체성을 담아낸 레지던시는 의미 있는 성과도 남겼다. 




레지던시 입주작가 비평가 매칭 



디자인에보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

디자인 회사에서 출발해, 실험적인 문화예술의 무대가 되고 있는 디자인에보(대표 김현정, 박세진)는 2018년 전북 최초의 도시 재생형 민간 레지던시인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를 만들었다. 이들은 전북의 문화예술을 타 도시의 예술과 연결하는 ‘커넥터’로서의 역할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자체적으로 기획한 아트페어 축제인 ‘고택 아트 페스타’를 통해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외부에 꾸준히 소개하고, ‘비평가 매칭’을 진행하며 작가들이 1년 간 쌓은 작업물에 대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나누기도 한다. 


디자인에보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작가 선정 방식에 있다. 이들은 정해진 기준에 맞춰 작가를 공모하지 않는다. 긴 시간을 갖고 여러 작가와 접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일종의 ‘레지던시 크루’를 꾸리는 식이다. 이런 방법을 택한 이유는 좋은 ‘작품’보다도 좋은 ‘작가’를 보기 위해서다. 김현정 대표는 레지던시 사업이 경제적 효율성으로는 따질 수 없는, ‘사람’이 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규모가 작은 민간 레지던시는 더더욱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지는 일이다. 작가의 삶 전반을 바라보는 관심과 정성이 없으면 레지던시는 운영할 수 없다고 전한다. 


박세진 대표ㅣ작가들이 온전히 작품 활동만 하는 시기는 많지 않아요. 다른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이죠. 레지던시는 그래도 비용의 부담이 적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잖아요. 그것만 보장해줘도 사실 레지던시는 성공하는 거예요. 저희의 요구 조건은 신작 한 점 이상이 전부거든요. 그런데 작업에 몰두할 기회가 생기니까 입주 기간 동안 60점 가까이 작업을 한 작가도 있어요. 레지던시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런 지점이죠. 환경이 주어지면 작가 스스로가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거예요.



연석산우송미술관 'Bridge-인도 한국 국제 아트 프로젝트’



연석산우송미술관 ‘우마레지던스’

완주 동상골 산골에 위치한 연석산우송미술관(관장 문리)은 미술관의 지리적 특성을 살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부터 이어온 ‘우마레지던스’는 젊은 미술가들이 동상골의 고요한 환경 안에서 깊이 사색하며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작가 발굴 및 예술을 통한 국내외 교류,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예술 커뮤니티 형성에 특히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동상면의 각 마을이 지닌 풍경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 있다. 우마레지던스 입주 작가와 전문사진가, 어린이와 주민 등이 함께 참여해 매년 전시를 열어오고 있다. 


우마레지던스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점도 주목된다. 지금까지 중국, 미국, 일본, 인도, 스페인, 태국, 방글라데시 등에서 40여 명의 미술가가 이곳에 체류하며 창작 활동을 벌였다. 레지던시를 통해 해외 작가들과 관계망이 형성되며 미술관의 국제적인 연대 활동도 자연스레 확대됐다. 지난 2023년 우마레지던스에 참여한 인도 작가와의 인연으로 미술관은 인도와 MOU를 맺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국내외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창작과 전시, 세미나, 문화체험 등을 진행하는 아트캠프를 열었다. 이러한 성과를 남기며 연석산우송미술관은 단순한 창작자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와 해외 미술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교류를 또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다.



2022년 연석산미술관레지던스 5기 입주작가 창작발표전



발굴과 지속,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이외에도 재단의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탄생한 주목할 만한 레지던시들이 있다. 2017년 설립된 단체로, 영화제작과 배급, 상영 활동을 하는 ‘도킹텍프로젝트 협동조합’은 전북에서 유일한 영화제작 레지던시를 선보였다. 5명 내외로 선정된 입주 작가는 지역 자원을 활용한 영화 제작에 나서게 된다. 지난 2022년에는 전주 본원에 더해 남원을 주된 무대로 삼으며, ‘제1회 남원 청년 영화제’를 개최해 구도심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어 입주 작가들과 함께 제작한 독립영화 ‘식혀주다, 읽혀주다’와 ‘서리다’, ‘가계’가 연이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진안창작공예공방, 예림미술관, 청목미술관의 레지던시를 비롯해 웹툰·애니메이션 분야의 창작공간을 제안하는 색다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지원 단체로 선정됐다. 새로운 단체들의 참여가 눈에 띈 해였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고민도 따른다. 전북재단의 〈창작공간 활성화 지원사업〉은 2024년도 공고부터 연속 지원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3년 연속 선정된 단체는 이듬해 지원이 제한되는 식이다. 다양한 단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이에 오랜 시간 이어온 ‘에보 미디어 레지던시’와 ‘우마레지던스’, ‘도킹텍프로젝트’ 등은 지난해 레지던시 사업을 쉬어가며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안게 됐다. 이들은 중앙의 보조금 사업을 통해서라도 사업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고 전한다. 레지던시는 특정 공간을 갖추고 유지해야하는 특성상 단발적인 지원만으로는 활성화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좋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발굴’과 안정적인 ‘지속’, 두 역할을 함께 고민하는 일이 전북재단의 과제로 남아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