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여행, 이 길  2026.5월호

그대! 행여 시린 마음 달래려거든 산성마을로 오세요
이택구 화가가 걷는 ‘남고산성길’




전주한옥마을 오목교를 지나 국립무형유산원 옆 좁은 천을 따라 걷는다. 그럼 도심 속에 자리한 조그만 시골마을 ‘산성마을’이 나온다. 남고산성에 오르는 길은 이 산성마을을 지난다. 야트막한 남고산을 오르고 나면 능선을 따라 남고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소박한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 길에는 고즈넉한 쉼, 푸르름, 역사의 숨결이 나란히 함께 걷는다.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산성이다. 남동쪽으로는 남원, 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제법 가파르지만 우아하고 단아한 산세는 발길을 찬찬히, 느긋하게 이끈다. 산성의 축조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 유래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과거 성 안에는 4개의 연못과 20여 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100여 채의 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고요한 숲길만이 이어지지만 당시 이곳은 많은 사람의 터전으로, 동·서에 성문을 두고 각종 건물이 즐비했다. 지금은 성벽이 많이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남고사’를 비롯해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성묘’, 산성의 내력을 기록한 ‘남고진 사적비’ 등이 있어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해질녘 들려오는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와 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하여 예로부터 ‘남고모종’이라 칭하며 완산 8경의 하나로 꼽힌다. 



남고모종 南固暮鍾


성곽의 종소리 어디에서 들리나

상방에 석양이 드니 문턱이 따뜻하네

머리 돌려 다시 초지를 찾으려니

텅 빈 산에는 흰 구름만 보이네.



굽이굽이 이어진 성벽길을 걷다보면 남고사 주변의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세 봉우리와 만난다. 억가지 풍경을 보여준다는 억경대, 물과 공기, 숲이 좋아 삼경사라 이름 붙은 절이 자리한 천경대, 고려 말 정몽주의 우국시가 새겨진 바위가 서있는 만경대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봉우리에 서서 발아래 전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순간, 마음은 절로 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여행하지만, 몇 걸음 옆에 있는 남고산성길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전주에 왔다면 이 길을 꼭 걸어야한다. 풍경은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전주의 상징과 같은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실은 이곳 남고산성 가는 숲길에 있다. 과거 지우산을 만들던 자리에 손수 공간을 꾸미고, 올해로 17년째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하루하루 일상이 팍팍하고 녹슬어간다면 작업실에 올 때마다 좋다. 이 길에는 맑은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늘 새로운 감동과 감각을 살찌게 해준다.


남고산 성벽 따라 두어 시간 걷는 길은 경치가 훌륭한 등산코스다. 억경대에서 전주의 주산인 완산칠봉의 지는 해를 바라보는 감동의 여운이 사라질 쯤 조금씩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한옥마을의 기와지붕 밑 역광, 천주교 성지의 불빛을 따라 기린봉을 바라본다. 이 놀라운 풍광, 역사적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남고사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추천코스 

산성마을-삼경사-천경대-동문지-남고산-억경대-서문지-남고사-만경대-서암문지




#이택구 화가

주로 한옥과 집에 관심을 두고 20여 년 동안 전국의 한옥마을을 주제로 전통 한지 위에 작품을 남겨왔다. 최근에는 나무와의 융합을 통해 자신만의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