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하 음악감독은 작곡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들을 자주 찾는다. 전주 천변 풍경을 바라보며 곡 ‘river’를 만들었던 경험처럼, 풍경은 그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그가 자주 찾는 공간 중 또 하나는 완주 비봉면의 천호성지다. 종교적 의미를 가진 공간이지만 그저 쉬고 싶은 사람들이 찾기에도 좋다. 짙은 초록 속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곳이다.
천호성지는 그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순교자들의 묘역이 모여있는 천주교 성지다. 이곳에 천주교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 전후 천호산에 충청 지역의 교인들이 숨어들었던 것이 시초다. 이후 1866년 전주 숲정이에서 처형당한 여섯 순교자 중 세 명과, 같은 해 공주에서 순교한 한 명, 2년 뒤 여산에서 순교한 무명의 순교자들의 묘역이 세워지며 천주교인들에게 의미가 깊은 공간이 되었다.
천호산과 수봉산 사이, 산자락의 낮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지형 자체가 포근하다. 그 품 안에 깃든 종교적 안온함과 포용이 더해져 이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기댈 곳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든다. 현재도 미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모두가 조용히 다니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이 든다. 천호산에 들어서면 먼저 옛 천호공소, 지금의 천호성당이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작고 소박한 성당이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피정의 집과 성인들의 묘역, 부활성당, 성물박물관 등이 나온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걷게 된다.
성지 안에는 '무능제'라는 이름의 작은 연못이 있다. '실로암 연못'이라고도 부른다. 실로암은 히브리어로 '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연못으로,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앞 못 보는 이의 눈을 고쳐준 곳으로 알려진 지명이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연못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게 될 정도로 예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연못 근처에는 대나무밭이 있는데, 조용하고 서늘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숲이 낮게 울리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봉동에서 삼례 가는 길 어름에 천호성지가 있다. 숲과 넓은 잔디가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 때문에 자주 찾는 곳이다. 천주교성지이기에 성당도 있고 순교자들 추모 공간도 있지만, 혹여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계절마다 꽃이 피고 조용해서 복잡한 생각을 비우기에 좋다. 종종 이곳을 찾아 음악을 만들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고는 한다. 바람 소리와 풀 내음에 잠시 몸을 맡기다 보면,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난다.
천호성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오은하 음악감독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오르는 동시에 공연, 미디어파사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너에게 닿기를>, <마음에 들다> 등을 통해 영화음악도 활발히 작업해왔다. 발매 앨범으로는 《무화가(無話歌)》, 《1st Movement》, 《River》가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