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여행, 이 길  2026.5월호

천년을 버틴 석탑이 전하는 사색의 시간
김애림 로컬 크리에이터가 걷는 ‘익산 미륵사지’




익산 금마면 미륵산 아래, 동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역 미륵사지가 있다. 석탑 주변으로 펼쳐지는 너른 평지와 푸른 나무, 잔잔한 연못 풍경은 우리를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다 가게 한다. 고향인 익산에 돌아와 활동하고 있는 문화기획자 김애림 씨는 그 풍경에 안겨 걷기를 좋아한다. 오랜 시간을 버티고 서있는 석탑이 걸음마다 좋은 기운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는 무왕 때 왕실의 안녕과 중생 불도를 기원하며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이곳 미륵사에는 3개의 탑이 있었다. 중원에는 목탑이,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은 언제 소실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동·서원의 석탑은 나란히 서서 웅장한 멋을 자랑한다. 서탑은 원래 9층으로 추정되나 반파된 상태로 현재 6층까지만 남아있다.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던 동탑은 1993년에 새롭게 복원하여 과거의 규모를 가늠하게 한다.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밝혀진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되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미륵사지 바로 옆에는 국립익산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그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미륵사지는 천천히 걸을수록 깊어지는 풍경을 품고 있다. 고요하게 서있는 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백제의 시간이 겹겹이 스며들고, 이어지는 넓게 트인 터와 잔디밭은 어느 곳으로 걸음을 옮기든 전부 길이 된다. 쉬어가고 싶을 땐, 연못 앞 벤치에 앉아 앞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석탑과 눈앞의 연못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특히 연못에 반사되어 비추는 석탑과 높은 하늘은 산책에 빠져선 안 되는 대표적인 경관 포인트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걷다보면 이곳은 유적지를 넘어 ‘시간을 거니는 길’이 된다.




미륵사지는 봄날에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관광지로는 잘 알려져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오고가지만, 걷기위해 와도 좋을 곳이다. 공간이 넓어 개방감이 있고, 탁 트인 풍경 속에서 걷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미륵사지에 가면 늘 기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깊이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멍 때리며 산책하기에도 좋아 누군가 익산에서 어디를 가보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계절이 좋은 날 특히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미륵사지를 찾는다면 국립익산박물관은 꼭 함께 들러야 하는 곳이다. 유적을 걷고 난 뒤 박물관까지 이어서 보면 익산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종 고민이 있을 때 미륵사지에 가서 천천히 걷곤 하는데, 갈 때마다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을 받는다. 나에겐 관광지라기보다 익산이 지닌 조용하고 깊은 에너지를 보여주는 장소같다.





미륵사지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7




#김애림 로컬 크리에이터

도시공학을 전공한 뒤 고향인 익산에 내려왔다. 로컬 콘텐츠 기획사 로잇스페이스를 운영하며 로컬매거진 ‘비마이크’ 발간, 로컬편집숍 ‘미지(MIJI)’를 운영하는 등 익산과 대전을 넘나들며 지역의 사람, 공간, 골목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아카이빙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