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활동증명 들여다보니  2026.6월호

서류로 증명해야 하는 이 복잡한 일




예술활동증명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복지 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절차로,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직업적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입니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인임을 승인하거나 증명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복지법, 예술 뒤의 사람을 보다 

‘예술활동증명’은 다소 낯설다. 예술을 특별한 영역으로 바라보아온 관객이나 독자들에게는 더 그렇다. 예술활동증명은 직업적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것이지만, 신분증이나 자격증처럼 이것이 있어야만 ‘예술인’으로 인정받거나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왜 굳이 이런 제도가 필요할까?” 예술활동증명은 다양한 지원과 혜택을 위한 기본 절차다. 예술활동증명을 받아야만 예술인복지법상 지원 대상이 되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각종 지원금 사업과 예술인 고용보험, 공모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된 건 15년 전이다. 지난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며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건이 알려지면서 예술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예술인복지법은 2012년 처음 시행됐다. 이 법은 예술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술인보다도 예술 그 자체만을 다루어온 법이, 이제는 예술 뒤에 있는 사람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활동증명이 본격 도입된 것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문을 열면서다. 2020년에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는 등 관련 제도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보니 ‘예술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문제는 늘 과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예술활동증명’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우선 기준은 정량적 수치였다. 그 기준은 일반, 신진, 특례 등 3개 종류로 나누고 다시 15개 분야별로 나누어 서로 다른 최소 기준을 정했다. 예를 들면, 문학은 시·수필 5편 이상, 단편소설은 3편, 장편은 1편 이상, 미술 분야는 1회 이상의 개인전, 5회 이상의 단체전, 만화는 6개월 이상 1편 이상의 연재 또는 1권 이상의 출판물이 인정되는 식이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계약서나 포스터, 팜플렛 등 참여 작품의 정보와 이름, 역할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적자료가 필요하다. 예술 활동의 전업성, 지속성, 다양성을 기준으로 심사를 거치면 최종 결과가 발표된다. 반려되는 경우 추가로 필요한 자료를 갖추면 재신청도 가능하다. 신청 종류와 기준에 따라 짧게는 1년, 최대 5년의 유효기간을 갖는다.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 등의 할인 혜택을 받는 예술인패스를 비롯해, 예술활동준비금, 예술인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국민연금, 생활안정자금, 심리상담, 정부의 행복주택 지원 등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술활동증명의 의미는 ‘예술인 인증’ 제도가 아니라고 명시하지만, 갈수록 많은 기능이 더해지며 사실상 예술인으로서 일상과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관문처럼 여겨지고 있다. 


해외 사례로 보는 예술인 복지제도

해외의 현실은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휴지기’를 뜻하는 '엥테르미탕'이라는 이름의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69년 시행된 이 제도는 긴 역사만큼 예술인 복지제도의 시초로 통한다. 일자리가 불규칙한 영화·공연·방송 분야를 대상으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형태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이 끝난 후에도 일정 기간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독일의 역사 또한 오래됐다. 독일은 1983년부터 예술가 사회보험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창작자를 일반적인 근로자처럼 바라보며, 예술인에게 연금과 의료보험, 요양보호 서비스를 지원한다. 네덜란드는 연차별 소득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최저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은 예술인을 위한 별도의 제도는 없지만, 일반제도로 편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을 예술가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예술 분야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선 국가들과 비교하면, 2010년대에 들어선 후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된 우리나라는 여전히 현장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과도기에 놓여있다. 


보호 장치 아닌, 넘어야할 문턱이 되다  

2012년 도입 이후,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누적 참여자 수는 20만 명을 넘었다. 매해 1만 명 정도 늘던 수는 2020년 이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복지·지원사업의 필요성이 늘며 예술인활동증명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급격히 커진 규모는 여러 문제도 드러냈다. 폭증하는 신청 건수에 비해 이를 심사하고 관리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재단 내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은 15명 남짓이다. 심의위원 수도 부족하다보니 전문성 있는 검토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행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니, 심사 기한은 무한정 늘어나기 시작했다. 평균 3개월부터 길게는 1년이 걸리기도 한다. 당장 지원이 시급한 예술인들은 증명서를 기다리다 다른 지원사업들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예술활동증명의 발급률은 31%에 그친다. 6만여 명의 신청자 중 절반 이상인 59%가 ‘미승인’ 상태로 남았다. 2024년도 역시 미승인율이 68%에 달해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여기에는 경직된 심사 기준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은 눈에 보이는 이름, 횟수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작품에 참여했어도 홍보물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 등록 미술관이 아닌 대안공간이나 팝업 전시, 계약서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활동, 협업·공동창작의 경우 온전한 1편이 아닌 1/n로 산정되는 기준 등 여러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증명 절차에서 겪는 어려움이 계속되다 보니, 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해 출발한 제도는 정작 예술인들이 넘어야할 문턱이 되어가고 있다. 




2026 예술활동증명 국회 토론회



해답은 구조적 개선에서부터   

이에 많은 예술인은 ‘서류가 아닌 예술가의 삶을 함께 바라봐 달라’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예술활동증명 TF’를 구성하기도 했다. 예술활동증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예술가들이 연대한 이 모임은 1차 설문을 통해 사례를 수집·분석하고, 토론회 등을 열며 제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지난 3월부터 제도 개편 담당 TF를 운영하고 나섰다. 현행 제도를 재검토하고 낡은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5월 한 달간 온라인 창구를 통해 예술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예술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다. 민간 ‘예술활동증명 TF’가 수집된 의견을 바탕으로 제시한 개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기준의 전환, 인력 충원을 통한 심사 기간 단축, 반려 사유 구체화 등 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 중 근본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담당 인력 충원이다. 이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예술활동증명 심사 일부를 지역 문화재단으로 분산하는 방안도 논의된바 있다. 일부 문화예술 기관과는 이미 협약을 맺고 예술활동증명 신청 지원 업무를 운영하고 있다. 신청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문화재단이나 지역문화진흥원 등 협력단체를 연결해 행정 검토와 자료 보완 안내를 돕는 식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 기준 10개 지역이 협력 체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여기에 전북은 빠져있다. 도 단위에서 협력 체계를 운영하지 않는 곳은 현재 경기와 전북뿐이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산하 ‘전북예술인복지증진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단 두 명의 담당자가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예술활동증명 관련 민원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상의 추가 업무를 감당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예술활동증명 지원 업무에는 신청 상담부터 자료 검토, 보완 안내, 민원 응대까지 상당한 행정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별도의 지원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심사 분산’을 논하기 이전에 인력과 예산 체계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복지와 지원을 분리하는 방법도 또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예술활동증명이라는 제도 하나에 너무나 많은 자격이 따라오고 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목적을 세분화하고, 필요에 따라 증명을 부여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