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할까요  2026.8월호

느리게 우려내고, 고요히 마시는 이 순간





물을 끓이고, 가지런히 찻잎과 다구를 준비한다. 

고요히 차가 우러나는 시간, 느리게 찻잔을 채우는 시간, 마주 앉아 음미하는 시간 동안 

일상엔 작은 여백이 더해진다. 차를 다루는 순간만큼은 도무지 서두를 수가 없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를 지나며 우리는 다시 차를 바라본다. 

커피에 밀려나 있던 차는 최근 2030을 중심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유행을 넘어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한 ‘말차 열풍’부터, 번화가 곳곳에 생겨난 

차 전문점들은 새로운 차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적인 격식을 벗어나 

우리는 이제 편안한 자리에서 차와 함께 머물고, 쉬어간다. 

누군가에게는 취미고, 누군가에게는 수행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쉼이 되는 차. 

오랜 시간 우려내야 비로소 깊은 맛을 내는 차처럼, 한국의 차 문화가 품어온 가치는 

천천히 음미할 때 선명해진다. 한 잔의 차에 담긴 역사와 철학, 

오늘의 일상을 따라, 우리 잠시 쉬어가 보자. 



고다인ㆍ류나윤 기자








어린 찻잎 


박남준 



어린 찻잎이 화염 타오르는 솥 안에서

다작다작 다작(茶雀) 휘돌며 춤을 춘다

싱싱한 것들이 연초록 봄빛들이

화르릉 달아 오른 불길을 품고 껴안으며

풀이 죽고 숨이 꺾인다

꺼내어져 둥근 빨래처럼 비벼지고

모아졌다 풀어졌다 다시 뜨거워진다

온몸 비틀리며 말라간다

어찌하여 향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가


차를 덖다가 그랬다

한 잎 찻잎이 온전히 솥에 던져져

초록의 향기로움 세상에 전하듯이

사람의 삶도 상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깊어 지는가

남김없이 수분을 빼앗기고 바짝 뒤틀린 것들이

찻물에 띄워지며 새록 새록거리는 아기 숨소리

처음 어린 찻잎으로 거듭나며 세상에 전한다


찻잔에 담긴 푸른 바람의 하늘과 별빛

저 이슬 고요하고 그윽한






박남준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등을 펴냈으며 산문집에는 『쓸쓸한 날의 여행』, 『별의 안부를 묻는다』, 『안녕♡바오』 등이 있다. 섬진강이 흐르는 지리산 자락에서 차를 덖고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