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성아, 김정일 감독
군산을 대표하는 빵집부터 해망굴, 동국사 등 역사를 지닌 관광지, 익숙한 거리, 평범한 담벼락까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도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오래전부터 답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 영화 제작 공동체 ‘씨네군산’이다. 2016년 지역의 주민시네마스쿨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은 ‘씨네군산’을 결성해 각자의 시선으로 군산을 바라봤다. 10년 가까운 시간 매년 새로운 단편영화를 만들며 20여 편의 영화로 군산을 기록했다. 영화와 동네를 애정하는 마음 하나로, 이들은 영화감독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도시를 살아간다. 씨네군산의 시작을 함께한 김정일 대표와 감독 김성아 씨. 이들이 스크린 너머로 전하는 군산은 어떤 모습일까.

씨네군산의 영화들
스크린 속 군산의 다양한 얼굴
금강과 맞닿아있는 군산 나포면 나포리. 김정일 감독의 영화 〈나포리〉는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구소멸로 나포리 이장은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한다. 그때 구세주처럼 젊은 부부가 이사 오며 부부를 마을에 정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얼핏 보면 유쾌한 영화지만, 그 안에는 지역 앞에 놓인 인구소멸 문제가 있다. 이외에도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좀비준기〉를 비롯해, 〈탁류 2017〉, 〈월명동 김씨아저씨〉 등 군산 사람이라면 제목만으로 반가운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도시 이야기와 함께 사회문제를 담아내는데 주목한다. 여기에는 거창한 시나리오가 필요하지 않다. 내 이웃의 이야기, 주변의 작은 이야기로부터 큰 메시지를 건져 올린다.
단편영화 〈칠순〉, 〈성훈〉, 〈택배〉 등을 연출한 김성아 감독의 작품에서는 한 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눈에 띈다. ‘세대’이다. 노인문제부터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까지. 각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군산이라는 도시를 비춘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 역시 지역과 세대로 연결된다. 군산은 심각한 고령화 지역 중 하나다. 이런 현실을 나누고 스스로도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요양 등급에 얽힌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영화의 모든 로케이션은 군산을 배경으로 한다. 덕분에 숨은 명소를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아주 좁은 골목들도 직접 걸어보면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이고, 오래된 건물들은 세월에서 오는 남다른 운치가 있다. 이제는 폐교가 된 상평초등학교, 선양동 해돋이공원, 옥구향교, 거친 매력을 지닌 내항 등 추천 장소들이 술술 나온다. 이들에게 군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동네다.

영화 '나포리' 현장사진
김성아 ‘우리가 군산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군산을 담는 거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죠. 로케이션이 어디냐에 따라 같은 시나리오도 굉장히 다르게 표현되거든요. 군산은 어떨 때는 참 쓸쓸하고, 어떨 때는 따뜻하게 다가와요. 저는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 산적이 없거든요. 평생을 살았지만 볼 때마다 다채롭죠. 군산만이 담아낼 수 있는 색깔이 있어요.
김정일 저한테 군산은 뭔가 덜 다듬어진 원석 같은 느낌이에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도시와 시골이 다 있고, 바다가 펼쳐지니 이곳에선 어느 영화든 다 찍을 수 있어요. 영화인으로서 또 군산 사람으로서 저희뿐 아니라 많은 국내 영화들이 군산에서 촬영되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바람도 있죠.
좋아하는 마음은 힘이 세다
씨네군산은 두 감독을 포함해 7명의 회원이 함께 하고 있다. 정해진 역할 없이 각자가 쓴 시나리오를 통해 매번 감독을 정해 함께 영화를 만든다. 매해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오다 올해는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제작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은 늘 따라오지만 지역과 영화를 향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내년을 준비하며 머릿속은 벌써 하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언제나 가장 큰 목표는 장편영화에 도전하는 일이다. 단편에는 담을 수 있는 이야기에 한계가 있다. 긴 호흡으로, 아직 담지 못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고 싶은 꿈이 있다.
김정일 장편영화는 그만큼의 에너지와 내공이 있어야하는데 그보다 필요한 건 사실 예산의 문제죠. 지원사업에도 계속 도전하며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요. 저는 매일 아이디어 노트를 써요.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시간을 정하고 앉아서 시나리오를 고민합니다. 그럼 어떻게든 무언가 써져요. 아침에 본 뉴스, 알고리즘에서 우연히 본 영상조차도 영감이 될 수 있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 100개가 넘는 이야기가 쌓였네요. 여기서 완성도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또 영화를 만들어야죠.

영화 '월명동 김씨 아저씨'
그가 최근 주목하는 주제는 ‘새만금’이다. 장편영화라는 꿈과 함께 새만금 재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계획을 품고 있다. 도시를 표현하고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시간이 갈수록 콘텐츠는 더욱 넘쳐난다. 그럼에도 영화만이 전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이들은 믿는다. 영화는 종합예술의 정점이다. 음악, 영상, 미술, 문학이 더해진 만큼 전달력과 파급력이 높다. 그 힘을 바탕으로 씨네군산은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군산을 기록하려 한다.
김성아 저는 어릴 적부터 주말에는 꼬박꼬박 영화를 보러다니던 아이였어요.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나 역시 가상공간에 빠져 힘든 감정을 느낀 건 아닌가. 이상한 힘과 위로를 얻으면서 그 뒤로 영화가 더 좋아졌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영화가 대단한 예술작품은 되지 않더라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스스로에게도 큰 힘이 돼요. 누군가 내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열심히 분석해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좋아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무모한(?) 용기가 필요하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이 도시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계속되는 한, 군산의 풍경은 이들을 통해 오래도록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