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는 사람들  2026.9월호

소리로 짓는 우리 고장 이야기

국악예술단 고창


국악예술단 고창



고창에는 오래된 것들이 많다. 수천 년 전의 시간을 품은 고인돌이 있고, 선운사의 숲, 서해 갯벌이 있다. 사람의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그중에는 소리도 있다. 동리 신재효로부터 이어진 판소리의 역사, 마을 곳곳에서 이어져 온 농악,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 머물며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오래된 소리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계속하여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중 하나가 2009년 만들어진 ‘국악예술단 고창(高唱)’이다. 지역명인 ‘고창’과 ‘높이 부르다’는 뜻의 한자 ‘고창(高唱)’을 함께 담은 이름이다. 뜻밖에도 단체를 만든 이들은 고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다. 고창 동리국악당에서 국악 강사로 활동하던 젊은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함께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뜻을 모았다. 당시 20대였던 이들은 어느덧 세월을 쌓았고, 국악예술단 고창 역시 2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왔다.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소리꾼 정호영만 고창에 터를 잡고 있고, 이외 단원들은 전부 다른 지역에서 모였다. 인터뷰를 함께한 김경민 사무국장도 본래는 전주 사람이다. 피리 연주자로 2012년 취업(?)했다가 지금은 살림까지 도맡으며 함께하고 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젊은 국악인들이 고창이라는 지역에서 만나 활동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 이름을 그대로 단체의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은 어쩐지 매우 특별해 보인다. 


고창에는 판소리 외에도 무대 위에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국악예술단 고창은 꾸준히 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관심을 두고 이를 공연으로 옮겨왔다. 신재효, 진채선, 고창읍성, 고창8경 등 고창을 주제로 한 창작극을 만들어왔다. 그중 <진주를 삼킨 거위>는 지역 출신 인물 윤회가 주인공인 유명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인돌을 소재로 한 <고인돌대장 모로>는 '적벽가'를 각색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이다. 관람하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게임에 참여하며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지역의 이야기를 음악과 공연으로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 대상이 지역의 아이들이다. 국악의 고장이라는 고창이지만, 이곳 아이들이 국악을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판소리는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처음 접하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악예술단 고창이 어린이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국악을 멀게 생각하기보다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리를 듣고 악기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유명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하는 공연 '진주를 삼킨 거위'.  고창 출신의 '윤회'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직접 악기를 배우고 공연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아이들이 꾸준히 국악기를 배우며 공연했고, 그중 한 명은 이후 국악을 전공하기 위해 예술고등학교를 진학했다. 한 번의 경험이 진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역에서 국악을 접할 기회를 만드는 일이 아이들의 삶에 생각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꼭 국악인을 키우기 위해서만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이라도 공연을 보고, 악기를 만지고, 소리를 들어본 경험을 남겨주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창’이라는 이름이 늘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역명을 전면에 내건 만큼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고민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공연할 때면 고창이라는 이름 때문에 의아해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름을 바꾸지 않은 것은 결국 이들이 고창에서 시작했고, 고창에서 국악을 해왔기 때문이다. 고창의 국악을 알리고 지역의 음악을 이어가겠다는 출발점은 단체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고창은 단순한 활동 지역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가는 배경이자 소재가 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민간 국악단체가 이토록 오래 활동을 이어오는 것은 쉽지 않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종종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기록해 왔다.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작은 단체는 어느덧 20년 가까운 시간을 쌓았다. 그 사이 구성원들의 삶도, 음악도 달라졌지만 고창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의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맞는 공연으로 풀어내고 아이들에게 국악을 경험할 기회를 건네는 것. 국악예술단 고창이 고창에서 소리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국악예술단 고창의 ‘높은 소리’가 앞으로 어디까지 닿을지, 그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