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는 사람들  2026.9월호

몸과 마음, 언어로 감각하는 나의 동네

작가 은도


작가 은도



1년 전, 완주 봉동읍의 한적한 거리에 책방 하나가 문을 열었다. ‘책의 별장’이라는 낭만적인 간판을 단 작은 독립서점이다. 이곳의 주인 은도는 2024년 완주에 귀촌했다. 평생을 서울 토박이로 살다가 완주에 잔잔히 뿌리를 내리고 책방지기이자 작가, 디자이너, 에디터, 글방 지기 등등 많은 수식어를 뻗어가며 살고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먼저 반기는 책들이 있다. 완주에 온 후 그가 낸 세 권의 책들이다. 그는 이곳에서 새롭게 꾸려가는 날들을 《귀촌 버퍼링》이라는 책으로 기록했다. 그에게 완주는 여전히 읽을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그 사이에서 나아가는 방법은 더 부지런히 완주라는 도시를 읽고 또 쓰는 일이다.




은도 작가의 책 '귀촌 버퍼링'




아름다운 발견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완주에 있다. 내가 매일매일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완주에서 계속 살고 싶게 만드는 순간은 대체로 수수한 기쁨과 천진한 활기로 이루어진다.’ 《귀촌 버퍼링》속 문장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귀촌, 그리고 완주라는 도시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쓴 이 책에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잔뜩 담겨있다. 작가가 발견한 ‘수수한 기쁨’, ‘천진한 활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들이었을까. 그 장면들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에게 완주는 계속해서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다. 


“완주와의 첫 인연은 귀촌 청년들이 운영하는 ‘고봉밥 캠프’로 시작됐어요. 캠프에 신청을 하고 퇴근 후 서울에서 차를 끌고 무작정 내려왔죠. 근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 사람들이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졌고 그들끼리 꾸려놓은 관계도 너무 좋았죠. 한 도시에 모여 살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무언가 만들어나가는 분위기가 이렇게나 좋은 거구나. 이게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긴 시간 서울에서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다양한 로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잡지였다. 전국을 다니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직장 생활에 지쳐있던 시기 점차 그의 삶에 ‘로컬’이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마다 로컬 관련 책을 꺼내 열심히 읽었다. 서울을 벗어나겠다는 결심이 서자 실행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료를 통해 우연히 완주의 귀촌 캠프에 참여하게 되고, 그날의 아늑한 기억이 그를 이곳에 머물게 만들었다.




청촌방앗간 '잇는 사이' 대화 워크숍




그가 도시와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산책이다. 시간이 날 때면 친구를 따라 완주 곳곳의 자연을 누빈다. 귀촌을 하면 멋진 풍경이 매일 당연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이 아무리 지척에 있어도, 스스로 누리려하지 않으면 무엇도 볼 수 없음을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도 바뀔 거라고 기대했어요. 근데 모든 건 결국 내가 애써서 만들고 지켜야하는 영역이라는 걸 실감해요. 가까이에 자연휴양림과 계곡이 있고, 그걸 누릴 수 있다는 자체가 감동이에요. 이런 걸 향유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죠. 저는 만경강 세심정 풍경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천변을 따라 쭉 이어지는 천년수들이 정말 크고 울창해요. 오래된 나무들이 주는 기운이 있죠.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요.”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호기심’ 

그는 완주에 오며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책방을 차린다, 다음은 완주를 담는 콘텐츠를 만든다. 책과 글을 옆에 두고 살아온 삶에서 자연스레 이어진 것들이다. 소비보다는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귀촌 10개월 차에 ‘책의 별장’을 열고 SNS 계정 ‘완주호사’를 운영하며 자신과 같은 귀촌 청년들과 완주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계획했던 꿈을 차근차근 이루었지만 과제는 꾸준히 지속하는 일이다. 책방만으로는 경제적인 여건을 채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기 위해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여름부터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완주 지역 돌봄 거점센터에서 아이들과 만난다. 일상이 또 한 번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두렵기보다는 즐겁다고 말한다. 요즘 일상의 가장 큰 활력을 아이들에게 얻고 있기 때문이다. 완주에서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지만,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들이 있다.




책방 한쪽에 제작한 완주 지도




“처음에는 생계에 대한 고민도 그렇고, 내가 해내야 할 것 같은 일들도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이곳에서의 삶은 목표를 세우기보다 ‘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목표를 오히려 버리는 과정인 것 같아요. 조금씩 내려놓고 느슨하게 가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잘 챙겨서 가면 되지 않을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는 삶의 태도를 연습하고 있어요.”


작가는 지금 ‘나’라는 사람을 이 도시에 계속해서 알리는 과정에 있다.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씩씩하게 해나갈 용기가 생긴다. 그는 앞으로 또 어떻게 이 도시를 읽어나갈까. 작가는 최근 완주 지역의 설화를 다시 쓰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주민의 시선으로 기존의 설화를 다시 쓰는 일은 이곳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저에게 익숙한 매체는 글이다 보니까 이곳에서의 경험을 계속해서 반추하고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완주에 와서 쓰고 싶은 말이 많아졌거든요.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호기심’이에요. 나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 살아가는 방식이나 어떤 관계를 맺는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이 생겨요.”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