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맨날 보고 있어?”
“다이어트 시작했잖아 …. 대리 만족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뭘 보는데? 먹방?”
“아.. 단순한 먹방 말고.... 라면 레시피?”
“적당히 봐. 너 그러다가 입 터진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래, 대리만족을 핑계로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도 유튜브로 음식 관련한 영상을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보다 보니 요즘은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묘하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단순한 ‘먹방’보다는 뭔가 나만의 레시피를 추천하는 영상을 추천하는 빈도가 늘었달까.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불닭볶음면’ 레시피였다. 그렇지 않아도 편의점을 오가며 매대에 있던 ‘불닭볶음면’ 종류가 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게 웬걸, 유튜브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고 한국인 외국인을 불문하고 정말 온갖 기상천외한 재료들이 다 동원되고 있었다. 친구의 말처럼 다이어트하는 입장에서 어쩌면 단순한 ‘먹방’보다 이게 더 위험한 영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라면은 이미 외국인에게도 유명해졌지만, 최근 유튜브를 보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라면이라고 하면 다른 브랜드를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사나이를 울리는 ~’으로 시작되는, 누구나 알 만한 OO라면 등. 물론, 이 라면도 매운 편에 속하지만, 사실 너무 강한 매운맛의 특성상 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는 ‘불닭볶음면’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얼마 전 덴마크에서 ‘불닭볶음면’이 “너무 매워서 위험”하다며 리콜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고도 처음에는 “유난이네, 괜히 라면만 안 팔리게.”정도로 넘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이 조치 이후 오히려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많아져 검색량이 폭주했고, 식약처 대응 이후 오히려 덴마크 측에서 리콜을 철회하고 인기가 더 올라갔다는 이야기에는 약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면, 적어도 MZ세대에게는(국적을 불문하고?) K-푸드의 전형이 이제 비빔밥, 불고기가 아니라 어쩌면 ‘불닭볶음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다른 라면도 아니고 하필 ‘불닭볶음면’이었을까?
문화를 바라보는 문법의 변화
나는 솔직히 이 난데없는 ‘불닭볶음면’의 인기의 비결이 너무도 궁금했다. 갑자기 새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귀한 음식도 아닌데 대체 왜? 그리고 흔히 지금까지 라면의 순위를 매긴다고 하면 ‘맛’이 절대적인 기준이었던 것 같은데, 매운맛이 아무리 중독적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매운맛에 특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인기라니. 그런데 지금까지 세계화가 된 음식을 떠올려보면, 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비빔밥, 스시, 프랑스 요리, 태국 요리 등을 떠올려보면 공통적으로 전통에 기반을 뒀지만 접근하기 쉽고, 현지화가 되며, 그러면서도 이국적인 체험이라는 요소들이 갖춰진 음식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들이 확산될 때는 다름 아닌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국가와 민족 같은 전통적인 정체성이자 경계에 기반한 특성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기존의 접근법으로는 이 ‘불닭볶음면’의 난데없는 인기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불닭볶음면’의 선풍적인 인기와 챌린지는 결국 음식, 그리고 문화를 바라보고 접하는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음식이 아니라 ‘콘텐츠’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세대가 다른 문화를 제일 먼저 접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책, 여행, 방송도 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SNS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핸드폰으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그만큼 상상하기도 쉬워졌다. 따라서 이전만큼 무게감 있는 ‘경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놀이’에 가까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쉽게 이국적인 것을 체험하고, 나에 맞게 변형해 다시 ‘업로드’한다. 이는 이제 사람들이 단지 ‘음식’의 고유의 물성과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콘텐츠’로서 소비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현상이라면 요즘 MZ세대의 소비 트렌드인 ‘모디슈머(Modify+Consumer)’에 비추어 봐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친숙한 것들을 직접 조합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닭볶음면’은 이 흐름에 최적화된 음식이자 도구, 콘텐츠다. 어쩌면 오히려 너무 진지하지 않은 음식이어서 더 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는 재미있게도 한국의 ‘불닭레시피’ 뿐 아니라 한국인들은 모르는 외국의 ‘불닭레시피’가 역수입되기도 한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다양해질수록, 사람들은 상상하고 이를 동력으로 무한히 확장한다.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고 놀이가 되는 나만의 레시피를 통해서.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불닭볶음면’이나 음식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문화 전방위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중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지금 ‘K-컬처’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일지도 모른다.